중국은 과학기술, 우리는 의대로
의대 정원 확대, 이공계 인재 쏠림 가속
‘의사 수’보다 중요한 건, "첨단 의료 기술"
[디지털포스트(PC사랑)=데이브]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대학 진로가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의학계열로 집중돼왔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최상위 대학의 이공계 합격생들조차 입학을 포기하고 의대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는 독점적인 의료 면허를 기반으로 한 직업의 높은 안정성, 사회적 지위 그리고 고소득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근무 중인 의사의 평균 연봉은 약 3억 100만 원에 달하는 반면, 이공계 박사의 평균 연봉은 9천만 원대에 그친다. 연구 환경과 경력 안정성, 정부의 지원 체계 역시 이공계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기초과학과 첨단 기술 분야의 인재 이탈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우리는 의대로
반면 중국은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칭화대, 베이징대, 저장대 등 주요 명문대에서는 AI, 로봇, 컴퓨터공학 등 이공계 첨단 전공이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선택을 독점하고 있다.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이 과학기술에 있다는 판단 아래, 우수 인재를 체계적으로 해당 분야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AI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AI 인재 양성도 활발해 전체 컴퓨터 과학 논문 중 AI 관련 논문 비중이 23.2%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AI 특허 점유율도 69.7%에 달하는 등 연구 및 지식재산 경쟁력 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대 쏠림 현상은 국가 미래 경쟁력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AI·반도체·휴머노이드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
의대 정원 확대, 이공계 인재 쏠림 가속
의대 정원 확대는 오히려 이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정원이 늘어날수록 의대 진학을 노리는 최상위권 수험생의 수는 더 증가하고, 이에 따라 주요 이공계 학과의 중도탈락률도 높아지고 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재도전을 위해 이탈하는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입시 기관의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 시 재수를 선택하겠다는 수험생의 비율이 40%를 넘었다. 이는 곧, 지금보다 더 많은 최상위권 인재가 의대로 몰릴 것임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는 신규 인재 유입은 물론 기존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까지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국가 경쟁력은 갈수록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 수’보다 중요한 건, "첨단 의료 기술"
다가오는 미래의료 환경은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가능성이 크다. AI와 의료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진단, 치료, 정밀 수술의 자동화 시대가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MS,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AI 의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진단 정확성과 비용 효율성 면에서 인간 의사를 앞서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변화를 감안할 때, 미래는 반드시 많은 수의 의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의사 수의 확대'가 아니라, 수익성이 낮아 외면받는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 확충과 지역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의료 전달 체계 구축이다.
이미 미국, 중국 등에서는 원격 상담, 원격 모니터링, 원격 수술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거나 시범 운영 중이다. 물리적 거리에 따른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기술적 노력들이 병행되고 있다. 물론 AI와 원격 진료가 인간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들은 필수의료의 공백과 의료 인력의 효율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첨단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후진적인 직역 갈등
이 와중에 의료계 내부의 갈등은 어처구니 없다. 양의계와 한의계 간 현대 의료기기 사용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한의계는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 효과 향상을 위해 첨단 의료기기 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양의계는 자격 미비와 환자 안전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맥진조차 센서 기반 장비로 대체되는 시대에, 기술 발전을 외면한 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음양오행’에 기반한 전통 이론과 경험 중심 진료는 현대의 과학적 의료 환경에서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은 국가 필수 의료 시스템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의학 자체가 비과학적이거나 의료 체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을 강화하고 제도적 역할을 조정함으로써 국가 의료 체계 내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의대와 한의대의 교육과정 중 60~80%가 중복되며, 필요시 추가적인 의과학 기반 교육을 통해 일정한 의료 행위와 기기 활용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는 단지 직역 간 갈등을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 의대 증원 없이 의료 인력 문제를 해소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의료 개혁, 직역 갈등이 아닌 국민 중심으로
궁극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 의료기기 사용 논쟁 등 모든 의료 제도 개편 논의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바로 “국민의 건강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이다. 그 출발점은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는 합리적인 기준의 적용이다.
의사 면허는 국가가 부여하는 공적 독점 면허이며, 그 자격 기준과 인원 규모를 결정할 권한 역시 국가에 있다. 필요하다면 면허 발급을 제한하거나 확대해야 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첨단 장비와 기술의 도입이 요구된다면, 관련 법과 제도 역시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정비돼야 한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의 직역 간 이기주의로 인해 연간 99조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불어 의료계는 환자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을 반복하고 있으며, 정부는 일관된 원칙 없이 이를 수용해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AI 시대, 의료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AI와 로봇이 인간보다 더 정밀하게 진단하고 수술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면, 의료 행위에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 역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의료는 특정 직역 간의 권한 다툼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환자 중심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돼야 한다.
지금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의료 체계의 전면적인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원화된 의료 체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효율성과 형평성, 그리고 미래 경쟁력을 고려한 구조적 개편이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
<이 기사는 digitalpeep님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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