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전주를 사랑하기 위한 ‘가이드’ 만화

2025-07-10

10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전주에 돌아온 건 2019년이다. 그간 전주에 자주 다녀가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하게 이런저런 연유로 전주를 떠났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청년들이 있었다. 우리는 전주에 대해 ‘잘 모른다’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 모르게 되었다’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직 기억하는 것들뿐인데, 기억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알거나 사랑하는 것은 아니므로 고향에 대한 나의 감정은 상당히 애매하고 복잡했다. 나는 <외계인 투어>에 실린 정세원 작가의 소개말에 포스트잇을 꼭꼭 붙여두었다.

“가끔 전주를 미워한다. 하지만 그것도 전주에서 20년을 지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군산에 근거지를 둔, 독립만화 전문 출판사 삐약삐약북스의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 만화 프로젝트다. 전북은 군산·전주·정읍 편이 나왔다. 그중 <외계인 투어>는 전주 편의 제목이다.

<외계인 투어>의 주인공에게 전주란 전 연인과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전주가 고향이라고 해도 거의 집돌이로 살았기에 아는 곳이 별로 없다. 심지어 이제는 타지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외계인’으로 상징되는 외지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갑자기 외계인들의 전주 투어에 가이드로 동행해야 한다니, 당혹스럽다. 사실, 그에게는 외계인의 가이드가 되는 것보다 전주를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더 곤란한 일이다.

애써 외계인들을 데리고 전주의 명소와 맛집을 돌아다녀 보지만, 어딜 가도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는 줄곧 ‘이제 여기 안 산다(그래서 모른다)’, ‘기억 안 난다’, ‘전주가 싫다’라고 주장한다. “나 사실 걔가 아니라 이곳을 사랑했었나?”라고 관계와 장소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면서까지 전 연인에 대한 감정을 부정해 보지만, 그의 이런저런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기억은 공간·사람·시간과 딱 달라붙어 있어, 하나를 만나면 다른 것들이 마음속에서 줄줄이 재생되기 마련 아닌가.

<외계인 투어>는 지역과 ‘나’의 관계를 서사화할 수 있는 실마리에 대해 말한다. 전주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다른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이나 나처럼 오랜만에 귀향한 사람에게 <외계인 투어>는 전주를 ‘옛 연인’ 같은 존재로 서사화하도록 돕는다. 다사다난했던 성장기를 보낸 고향과 미우면서도 행복한 순간도 많이 공유했던 전 연인은 어렵지 않게 동일시된다. 서사화와 명명이 가능해지면 우리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거리를 바탕으로 기억과 경험을 해석할 수 있게 되면, 무언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전주를 서사화한다는 것은 나의 지난 시간을 해석하고 보듬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주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다시 사랑하는 일로 이어지는 셈이다. 

요컨대, 나는 <외계인 투어>로 뒤늦게 전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전주를 욕할지라도 외지인이 욕하는 소리는 싫은 것을 보면 제법 잘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전주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주를 버리지 못하겠거든, 이 만화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순간, 전주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박근형 평론가는 2017 디지털만화규장각 신인만화평론 공모전, 2024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만화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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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사랑 #가이드 만화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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