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고 며칠 안 지나 겨우내 눈과 서리를 견디며 더 단단하고 더 달달해진다는 해남 겨울배추 수확 현장에 다녀왔다. 수년째 월간으로 발행되는 농업 전문지에 지역명과 나란히 등호를 붙여도 될 만큼 이름난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2월호 취재였다. 월간지 발행 특성상 한 달을 앞당겨 준비하는데, 보통 때 같으면 원고를 마감하고 열흘여 여유가 생기지만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진 설 연휴가 곧이고 2월은 짧은 달이다. 그제 2월호를 마감하고는 봄맞이 3월호 취재 후보군을 살피다가 아차 했다.
얼른 해가 바뀌길 바랐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날들 속에서 이렇다 할 회고도, 다짐도 못한 채 어물쩍 새해를 맞았다. 쏟아지는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오늘은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내일은 뭐가 달라지려나 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유예되진 않는다. 그렇게 새해를 무망하게 시작해 놓곤 밥벌이하는 글 속에선 때때마다 한 해 갈무리를 어쩌고, 새해 기운이 어쩌고를 지나 벌써 봄을 좇고 있으니 홀로 낯부끄러워졌다.
마침 한 달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이 칼럼도 새해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무릇 시의적절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지난해 이맘땐 무어라 썼더라. 아무렴 그럴듯한 말을 썼겠지만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력을 나무라며 토해냈던 말을 검색했다. 1년 전 지면 속의 나는 ‘동네를 자주 어슬렁거릴 것, 단골 가게를 만들 것, 그리고 안부를 건네는 이웃이 될 것’이라 뱉으며 분투를 다짐했다. 기억이 났다. 그때의 다짐은 제법 진심이었지만 이제 와 그 다짐이 얼마나 진심이었고, 얼마나 이루었는지는 중요치 않게 됐다. 저울은 왜 그 다짐을 기억해내지 못했는가로 기울었다. 멀리 돌아볼 것 없이 지난 해남행을 복기하자 이유가 또렷해졌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철마다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 다양하지만 전통적으로 겨울에 싱싱한 채소를 먹긴 힘들다. 늦가을 수확한 채소를 갈무리해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김치를 담근 건 제한적 자연환경에 대비한 조상들의 지혜가 아닌가. 1980년대 들어 남단의 제주와 해남 등지 농부들이 배추 월동을 시도했고, 갖은 노력 끝에 재배에 성공했다. 땅끝에서 만난 농부에 따르면 겨울배추는 추위를 이겨내려고 스스로 당대사를 활발히 해 에너지를 만든단다. 겨울배추가 더 달고 아삭한 건 당대사를 활발히 하는 과정에서 당도가 높아지고 조직이 치밀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모아 노지에서 월동하는 겨울배추 맛을 모르고 이 겨울을 보내는 것은 손해 아니겠느냐고 기사글을 정리했다. 그런데 정작 ‘지금이 딱 맛이 그만인 때’라며 땅끝 농부가 안겨준 귀한 배추를 동행한 사진기자에게 선심 쓰듯 양보했다.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추 세 포기를 한 망에 담아 주었으니 1인 가구에 많은 양이었고, 더군다나 그날은 해남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곤 상경하는 길 배달앱에서 저녁 메뉴를 고르며 안도했던 나를 기억한다.
시의적절하게 건축가 조성익이 쓴 <건축가의 공간일지>(북스톤)에서 다음의 문장을 마주했다.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면, 기억에 새겨둘 만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일정을 끼워 맞추는 데는 능숙하지만, 시간을 길게 보고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오뚝한 일정을 세우는 데는 서툴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나는 마감을 어기지 않는 데 꽤 능숙해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때가 많다. 올해도 끝끝내 거짓말이 될지 모를 글을 꽤 부려 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이 쓰겠다고 다짐한다. 소설가 김연수가 에세이 <우리가 보낸 순간>(마음산책)에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라고 쓴 문장을 기억한다. 더 많이 들키도록 기꺼이 쓰자고 다짐한다. 내 부끄러움을 믿으며, 그 부끄러움이 나를 오뚝하게 세워줄 거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