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신문=차종환기자]
전세계가 인공지능(AI) 때문에 난리다. AI가 좋은 건 알겠는데 이를 온전히 작동시킬 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AI기술에 있어 가장 앞서 나간다는 미국이 거의 개발도상국 수준의 전력망을 갖고 있다고 하니 유난히 이러한 부분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에, 미국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전력망 고도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AI라는 거대 패러다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전력 부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미 한국은 매년 여름만 돼도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독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 핵심산업으로 삼고 있다.
우리 정부도 AI∙데이터 시대에 대응해 국가 전력망을 적극적으로 확충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망의 확충이 AI를 돌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AI 연산과 관련한 데이터센터 단의 인프라다.
진정한 AI 시대는 일반 사람들이 AI를 지금의 인터넷 쓰듯이 자연스럽게 쓰는 세상임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센터와 사용자 디바이스 간 연결이 필수적이다. 이른바 ‘온디바이스AI’다. 전력망 확충 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져 보이는 통신망이 매우 우려스러워 보이는 대목이다.
스파이런트커뮤니케이션즈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의 영향으로 데이터센터와 이를 둘러싼 상호 연결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어 네트워크를 재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I 모델의 복잡성과 규모가 커지면서 더 큰 대역폭과 속도를 필요해 1.6테라(T)급 이더넷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상당량의 AI 트래픽 역시 엣지에서 발생하고 있어 액세스 및 전송망의 조기 용량 업그레이드도 필요한 상황이다. 원거리 엣지 사이트는 25~50G 속도 등급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고, 중간 엣지 사이트는 100~200G, 근거리 엣지 사이트는 400G가 필요하며 잠재적으로 800G 네트워크장비로 더 빠른 교체가 진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11일 개최된 ‘ICT기기산업 페스티벌’의 핵심 키워드도 온디바이스AI였다. 발표자들은 온디바이스AI 시대를 대비해 통신망의 보안, 유무선망의 지능화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AI-RAN, 양자암호통신 등 통신망이 짊어져야 할 과업도 전력망 못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던 초고속인터넷에 비견할 정책적 드라이브가 절실한 시점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진짜 5G'인 5G SA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천명하고 나선 상태다. 이는 자연스레 6G 주도권 확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반면, 놀라우리만치 통신망 투자에 관심이 없는 우리의 정책당국이다.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본업을 마치 남일인양 취급한 지 오래다.
그동안 잘해왔기에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일까. 50점 맞던 학생이 80점 맞기는 쉬워도 90점 맞던 학생이 100점 맞으려면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90점에 안주하려는 건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