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重 주원호 특수선사업대표
트럼프 “美조선업 재건”… K조선 호재
G2 해양 패권경쟁 속 반사이익 기대
함정 ‘적기 생산·저비용 공급’ 韓 유일
인프라·지리적 위치 등서 최적 파트너
HD현대·美 최대 방산 조선소 MOU
상선→군수지원함→전투함 협력 기대
美, 정치·제도적 불확실성… 변수 산적
국익 위해 정부·기업 ‘원팀’ 협력 중요
지난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기치로 내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많이 뒤처져 있다. 예전엔 하루에 한 척의 배를 만들곤 했지만, 지금은 1년에 한 척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쇠락한 미국 조선업의 현실을 빗댄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말 46개 조선소가 문을 닫고 노동자 4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는 미국이 자국 이외 국가에서 함정을 건조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해군력이 급성장한 중국과의 해양 패권 경쟁 구도에서 밀리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미국발 관세전쟁 속에서도 국내 조선업이 미국의 중요한 협력 분야로 거론돼 온 배경이다. 양국 간 협력이 성사된다면 한국 조선업계로선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는 셈이다.
그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HD현대중공업 주원호 특수선사업대표를 만났다. 방위산업 분야이긴 하나 국내 조선업체 대표가 나서 한·미 조선 협력 가능성을 진단하기는 드문 일이다. 그는 1992년 HD현대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HD현대 미래기술연구원장, 조선사업부 기술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2년 11월부터는 함정 등을 만드는 특수선사업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초격차 조선기술 연구와 함정 수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 ‘철탑산업훈장’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에 있는 HD현대 R&D센터에서 1시간30분 정도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의 답변은 차분하며 꾸밈없었다. 엔지니어 출신다웠다.

―한국의 조선·방산분야가 트럼프 시대 가장 큰 수혜 업종이 될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미국이 안고 있는 조선과 해양방산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력을 가진 동맹국이 필요하다. 그중 한국이 가장 적합한 파트너다. 미 동맹국 중 가장 큰 생산 규모와 역량에다 얼마든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확장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 해군의 핵심전력인 이지스구축함은 한·미·일 3국이 모두 건조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빨리, 가장 적은’ 비용으로 공급 가능한 나라는 우리뿐이다. 현재 HD현대 혼자서 연간 1척의 이지스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는 데 반해 미국은 연간 1.6척 정도 만든다. 만약 HD현대의 그룹 전체 생산능력을 투입하면 5척 이상의 건조작업도 수행이 가능하다. 확장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데도 건조 비용은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미국이 조만간 한국에 현지 조선소 투자와 인력 교육 지원, 새 선박 건조를 망라한 ‘조선 협력 패키지’를 제안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현재 한·미 정부 간에 조선협력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과의 조선·해양방산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간 협상, 즉 G2G 방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업은 그다음이다.”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 함정을 건조한다면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현재 미국 이외 지역에서 군함을 건조하는 것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USC 8679)에 의해 금지돼 있다. 예외 승인이 가능하다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상선 건조사업부터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그다음이 군수지원함, 전투함의 순서가 될 것이다.”
―미 함정을 대상으로 하는 MRO(유지보수) 사업도 유망하다는데.
“우리는 지난해 7월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에 도전해 자격을 취득했다. 미 해군과는 올해 적어도 2~3척의 MRO 시범사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MRO 사업 자체 사업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국 함정 건조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신뢰구축 마중물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 조선산업이 과연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전략적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보나.
“한·미 간 조선 협력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분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는 무관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위한 선박법(SHIPS ACT for America)’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80여척의 미 국적 무역상선 척수를 250척 규모 전략 상선단(SCF)으로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올해 1월 미 의회예산국(CBO)이 공개한 ‘향후 30년(2025~2054) 함정 건조 계획’을 보면 현재 295척인 함정 수가 2054년 390척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 기간 도태될 함정까지 고려하면 새로운 함정 건조 소요가 전투함 293척, 군수지원함 71척 등 364척에 달한다. 사업비는 총 1조75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00조원에 달한다. 이는 연평균 10여척의 함정 건조에 매년 평균 358억달러(약 51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함정 MRO 역시, 미 해군 인도·태평양함대의 시급한 가동률 개선 이슈까지 고려하면 한국은 지리적 위치나 인프라 면에서 미국에는 매력적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지난 7일 HD현대가 미국 최대 수상함 건조 조선소인 헌팅턴잉걸스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이번 MOU는 세계 1등 상선 건조 조선소와 1등 함정 건조 조선소 간의 전력적 협력 구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헌팅턴잉걸스와의 협업은 2023년 말 한·미 방산협력의 일환으로 방위사업청이 주관한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조선소 현장 방문 시 처음 착안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왕래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MOU는 아니다.”
―헌팅턴잉걸스의 현재 수준은.
“헌팅턴잉걸스 그룹은 이지스함과 같은 전투함을 주력으로 건조하는 잉걸스 조선소(미시시피주)와 항공모함 및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뉴포트뉴스 조선소(버지니아주) 등 2개의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미 해군의 주력 전투함 대부분을 건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작년 매출은 약 115억달러(약 16조원)다. 연간 약 2.2조원에 불과한 우리 정부의 함정 등 특수선박 발주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앞으로 ‘함정동맹’으로 발전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헌팅턴잉걸스의 조선소 운영 상황 전반을 파악하기 위해 곧 현지를 방문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양사 간 협력이 구체화할 것이다. 우선 미국 조선산업의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러고는 인력 교육, 기자재 공급,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지원과 투자까지도 검토할 수 있다. MRO 사업뿐 아니라 향후 공동 건조로 이어진다면 함정동맹은 성사될 수 있다. 지금은 그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단계라 보면 된다.”
―미국과 협력에서 우려되는 사항은 없나.
“미국의 조선산업은 인력 부족, 공급망 쇠락, 공정의 비효율성 등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조선업은 전형적인 생태계형 산업이라 어느 하나만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극복되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의 법과 제도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적용된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오지 않은 것도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정치적 불확실성은 한국 조선업체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의 조선 협력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하며,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해 지속 가능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국회 차원의 법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헌팅턴잉걸스와의 MOU 체결이 한화오션의 미국 내 조선소 인수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경쟁사인 한화오션은 작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현지 생산 및 MRO 거점을 구축했다. 기술협력 방식이 아닌 현지 시장 개척을 위한 접근이다. 반면 우리가 추진하는 방안은 미국 조선소가 스스로 자생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미국 조선업계가 굳이 우리를 견제하거나 경쟁상대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상호 윈윈하는 모델이다.”
―앞으로 각오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미국과의 조선 협력은 어느 특정 기업이 주도해 나갈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 대 정부 간 협상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한·미 해양방산 협력방안이 구체화하길 기대한다. 국익 앞에서 기업들도 하나가 되어 한 방향으로 협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프리카 격언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해결해야 할 과제와 장애물이 많은 먼 길이다. 함께 가야 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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