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장 경보 종목으로 지정된 상장사가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시 부진 장기화와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특정 테마에 따라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한 중소형주가 많았던 여파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벌써 120개 종목이 시장 경보 조치를 받은 가운데 조기 대선이라는 불확실성까지 있어 상반기에도 테마주가 횡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 경보 조치(투자 주의, 투자 경고, 투자 위험)를 받은 상장사는 2724개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증시 변동성이 컸던 2020년(7846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시장 경보 종목이 4년 만에 최다를 기록한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증시가 부진하면서 주도주가 사라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2차전지 등 대형 종목이 좀체 힘을 못 쓰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특정 테마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상반기에는 총선을 시작으로 블랙먼데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까지 증시 변동성을 키울 재료들이 많았다.
특히 12·3 계엄 사태 여파로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달에만 427곳이 시장 경보 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증시가 급락한 지난 2020년 4월 이후 최대치로 전월 대비로도 77.92% 증가했다. 실제 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테마주인 오리엔트정공은 계엄 직후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270% 급등했고, 지난달 6일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돼 매매 거래가 중단됐다. 이후로도 상승세가 유지되면서 지난달 12일 투자 위험 종목으로 지정돼 두 번째로 거래가 정지됐다.
올해 들어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10일 기준 벌써 120개 상장사가 시장 경보 종목으로 지정되며 7거래일 만에 이미 지난해 1월 한 달치(206개)의 절반을 넘어섰다. 양자컴퓨터 테마로 주목을 받으며 지난해 말부터 급등한 한국첨단소재가 대표적 사례다. 한국첨단소재는 지난달 23일 투자 경고, 이달 3일 투자 위험 종목으로 지정되며 오리엔트정공과 마찬가지로 두 차례 매매 거래가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까지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며 시장 경보 조치를 받은 종목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은데다 조기 대선 가능성까지 열려있기 때문이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계엄 사태 이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며 여전히 차기 대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정치 테마가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슈에 따라 단기간에 가파르게 상승한 테마주들은 그 만큼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오리엔트정공은 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한국첨단소재를 비롯한 양자컴퓨터 관련 종목들은 기술 상용화까지 20년 가량이 걸릴 것이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에 급락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증시가 부진하면서 특정 테마에 따라 투자 심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났다”며 “이러한 종목들은 실적이 뒷받침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결국 하락을 면치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증시 특성상 초소형주가 많은 점도 테마주 장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가총액이 낮은 소형 종목의 경우 유동성이 조금만 유입되도 단기 급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형주들은 수급상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중소형 종목이 많이 포진한 코스닥 시장에서 테마주 장세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