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47명→6명…멈춰진 미완의 위안부합의 10년

2025-12-28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2015년 12월 28일)

딱, 10년 전이다. 윤병세 당시 외교부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문을 공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하지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표현이 무색한 10년이었다. 정권 교체와 함께 합의문은 형해화됐고, 합의문 발표 동시 생존했던 47명의 위안부 할머니는 이제 6명만 남은 가운데, 양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놓고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첫 공식 사과', "굴욕 협상" 비난에 자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아베 신조 총리)

당시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총리의 첫 사죄와 반성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각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지원 등을 포함해 "일본에게 받아낼 수 있는 최대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 등 시민단체들이 "피해자 배제", "굴욕 협상"이라며 반대시위에 나섰고 여론도 차가워졌다. 또, 양국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내용도 논란이 됐다.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수용하지 못한다"며 사실상 철회를 시사했고, 강경화 외교부장관 직속 TF의 '위안부 합의' 조사(2017년 12월 27일 보고서 발표), 화해·치유재단 해산(2018년 11월 21일) 등이 이어지면서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폐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됐다.

8년째 '파기 아닌 파기'…할머니 46명→6명

문재인 정부의 태도에 일본은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 외무성은 수차례에 걸쳐 "합의 유지 외엔 다른 선택지는 없다"며 재협상 불가 및 한국 정부의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반겼던 미국도 양국 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한국에 냉담했다. 중국에 맞선 한·미·일 3국의 연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23년 본지 연재 회고록에서 "해외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위안부 문제에 협조를 구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측의 압박에 아베 총리가 ‘백기’를 들었다"며 위안부 합의 타결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부담을 느낀 문재인 정부는 결국 2018년 1월 "재협상 요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합의 내용을 수용한 것도,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합의 당시 46명 생존했던 할머니는 현재 6명만 남은 상황이다.

44억원은 할머니들에 지급, 남은 기금 57억원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되면서 일본 정부가 출연한 기금 10억엔의 향방도 쟁점이 됐다. 당시 외교부 등에 따르면 생존한 할머니 47명 중 35명에게 44억원이 지금 됐으며, 남은 기금 57여억원은 동결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기금을 일본 측에 돌려주면 합의 파기가 될 수 있어 곤혹스러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2023년 "국내 의견수렴 및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방안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만 답했다. 한·일 양국 간엔 조율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재명 "국가 간 약속", 당분간 동결

현재 양국 사이엔 '굳이 손대지 않는다'는 암묵적 균형이 형성된 상태다. 이미 한바탕 홍역을 앓아, 나서봐야 정치적 이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대통령도 8월 2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전 정권의 합의지만, 국가 간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장관도 23일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으며, 한국 정부도 공식 합의로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남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고 싶다”며 원론적 입장만 폈다.

이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10주년' 기사에서 "일본 측은 문 전 대통령과 같은 진보 계열인 이 대통령이 합의 계승 입장을 보이는 만큼, 양호한 한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관망하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윤병세 "최선의 협상", 기시다 "큰 결단"

협상을 주도했던 윤병세 당시 외교부장관은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10년이 지났으니 과거보다는 냉정하게 이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시로선 최선의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일본의 사과와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게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며 "당시 할머니들을 만나 4분의 3이 동의한 내용이었는데, 일각에서 방해하고 일방적 주장이 확대 재생산됐다. 그 결과 얻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는 이런 '지뢰'들이 남아있어 진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재명 정부가 차분하게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당시 외교장관)도 이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들이 큰 결단을 내려 셔틀 외교 재개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이웃 나라나 역사와 관련된 문제는 앞(상대국)에서 날아오는 탄환(비판)보다 뒤(국내)에서 날아오는 탄환이 더 가혹하다"며 "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외교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며, 결과를 내면 국민도 반드시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본지 연재된 회고록을 통해 “외교협상이란 것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100%를 다 얻을 수는 없다. 우리가 100% 일본은 0%, 이런 것을 기대하면 협상 테이블은 깨지기 마련이다”라며 “공들여 만든 위안부 합의가 나중에 문재인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사실상 폐기처분됐다는 소식을 옥중에서 들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기분에 휩싸였다”고 아쉬워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23년 출간된 회고록에서 "(위안부) 합의는 깨졌지만, 한 번 국제사회를 향해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외교상 '모럴 하이 그라운드(도덕적 우위)'가 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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