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개

2025-12-02

흰 푸들이 우다다다 해변을 달린다. 궁금한 듯 앞발로 모래를 파헤쳐 머리도 넣어 보고, 주인을 향해 날아갈 듯 달려든다. 호기심 많은 개를 따라 카메라도 바쁘다. 개의 목에 걸어둔 소형 액션캠이 목줄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낸다. 카메라는 때론 거꾸로 뒤집혀 개의 뒷다리를 통과한 세상을 보여준다.

내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주인이라면 문득 궁금해질 법하다. 미국 퍼포밍 아트의 선구자 조안 조나스(89)는 반려견 오즈의 목에 고프로를 달았다. 2014년 내놓은 21분 영상 ‘아름다운 개’(사진)다. 주인이 가장 좋아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을 딴 푸들 오즈가 퍼포머이자 공동 창작자다. 예술가의 개는 할 일이 많다.

조나스는 움직임과 시간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첫 퍼포먼스 영상은 16㎜ 흑백 무성 영화인 ‘바람’(1968).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동료들과 삭풍을 맞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젊은 예술가들의 경이와 즐거움이 5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았다. 백남준 예술상을 받은 조나스의 국내 미술관에서의 첫 회고전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작품이다.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내년 3월 29일까지다.

반려견은 주인보다 수명이 짧아 오즈는 이제 세상에 없다. 고령으로 본인의 회고전에 오지 못한 조나스는 부엌이 보이는 자기 집 거실에서 영상 메시지를 찍어 보냈다. “작품의 의미를 애써 알아내려 마시고, 천천히 둘러봐 주세요. 여러분들이 느끼는 바가 맞는 겁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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