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를 ‘젊음의 예술’이라고 해요. 나이가 들며 클래식 발레를 출 수 없는 몸이 되고, 한 작품 한 작품 이별하면서 자연스럽게 후배 무용가들에게 시선이 옮겨가더라구요.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김주원은 여전히 발레라는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열망이 그득하거든요. 무용 인생의 ‘전반전’을 발레리나로 춤에 빠져 살았다면, ‘후반전’은 예술행정가로서 후배 무용수와 그들의 춤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발레리나 김주원(48)은 지금 한국 무용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06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는 등 한국 발레계 ‘간판 무용수’로 활약했다. 2012년 퇴단 이후에는 다양한 창작 작품과 TV 예능을 통해 발레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방향에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3월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은 데 이어 지난해 10월 국내 최대 발레축제인 대한민국발레축제의 대표 겸 예술감독으로 위촉되면서다. 발레리나에서 예술행정가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그는 서울과 부산, 공연과 사업계획서 사이를 1년여 동안 분주히 오갔다.
김주원은 지난 5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전에 무대 위에서 직접 춤을 췄다면, 이제는 무대 밑에서 무용수, 스태프, 창작자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가고 그들이 빛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무대에 있을 때 만큼이나 행복하다”며 “공연의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이 또다른 춤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원은 이전부터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거나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공연 기획 자체가 새삼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단체를 책임진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같아요. 축제를 운영하기 위해선 정부 공모사업에 지원금을 신청하고, 후원금도 모아야 하니까요. 제가 도와달라는 부탁을 이렇게 잘 할지 몰랐어요. 시민들의 삶 속으로 예술이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일이라고 당당하게 말씀드리고 있죠.”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계기라고 하면 부산오페라하우스 측의 제안이었다. 무대와 멀어질 것 같아서 망설이는데 워크숍 만이라도 열어달라고 했고,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 무용수들의 열정이 마음을 움직였다. 대한민국발레축제도 축제를 다음 세대로 이어갈 적임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내부 의견이 그에게로 모였다. “사랑하는 발레를 하다보니 물 흐르듯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거든요. 국립발레단 때도 200% 노력으로 춤을 췄고, 퇴단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창작해온 건데 꾸준한 작업이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2027년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지난해 ‘부산발레시즌’을 시작하면서 김주원을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는 한편 발레단 단원을 선발했는데 아직은 시즌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관 전까지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체계를 만드는 것이 과제다. “지역은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적은 편이죠. ‘문화의 지역화’가 이뤄지면 실력있는 예술가들이 서울 아닌 지역에서도 일자리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부산은 관광자원이 많은 도시니까 문화가 반드시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하구요.”

지난 5~6월 열린 제15회 대한민국발레축제는 주제를 ‘연결, conneXion’으로 제시했다. 발레계의 과거·현재·미래, 예술과 삶, 민간과 국·공립 단체의 연결 등을 두루 고민한 단어다. 이번 축제에서 한국 발레의 거목인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의 대담 형식 공연이 관심을 모았다. 발레계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두 주인공을 중간에서 이은 진행자가 3세대 격인 김주원이었다. “두 분은 한국 발레 레퍼토리를 확립하고 ‘스타 마케팅’을 통해 대중화를 이끄셨죠. 저희 세대가 외국에서 배우고 돌아와 선생님들이 닦은 토대 위에서 꽃을 피웠다면, 다음 세대는 한국에서 키워져 외국에서 주역까지 맡게 됐어요. 이제는 한국의 콘텐츠, 안무가를 육성하는 게 과제입니다. 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는 창작 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국립단체장이나 기관장이 되면 그러한 목표에 다가갈 수 있지 않겠냐고 찔러봤다. “제가 욕심쟁이지만, 자리에 욕심을 내본 적은 없어요. 저는 예술로 소통하는 일이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리는 오히려 제 목표에 비하면 작은 것 아닐까요. 최태지 선생님이 ‘주원아 발레신이 널 선택했어. 넌 도망 못가. 나도 선택받아 살아지더라. 발레신이 일을 시킬거야’라고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해오다보니 무슨 말인지 공감 되면서도 아프더라구요. 저는 발레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너희가 행복하게 춤출 수 있게 하라고 발레신이 날 선택한 건가, 더 노력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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