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이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만 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영풍의 공세적 움직임과 더불어 양측 간 소송도 남아 있는 만큼 이들의 신경전은 더욱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최근 국내 기업과 손잡고 전략광물인 '안티모니'를 재가공해 미국에 추가 수출하기로 했다. 지난 6월과 8월 미국에 안티모니를 직접 수출한 이후 잇따라 성과를 내고 있다. 안티모니는 탄약과 방산 전자장비, 방호 합금 등 여러 군수·방위산업 분야에서 필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고려아연은 제련 기술을 앞세워 '탈(脫)중국'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8월부터 수출허가제를 시행했고 같은 해 12월 미국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안티모니의 76%를 중국에 의존하다가, 중국이 미국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면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고려아연의 글로벌 행보는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과 맞물린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회사는 미국을 거점으로 전략광물 공급과 자원순환 사업을 확장하며 공급망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고려아연은 올해만(직접 수출량 기준) 미국에 안티모니를 100톤(t) 가량 보낼 예정이며 내년에는 240t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는 게 목표다.
게르마늄 생산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앞서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 방산 업체와 게르마늄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2028년부터 연간 10t 규모의 게르마늄을 생산하고 향후 수출처 확장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제련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상반기 매출은 7조658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9% 성장했으며 2000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102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실적과는 별개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이 여전히 불확실성 요인으로 남아있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 측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며 경영권을 유지했지만 이후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의결권 행사허용 가처분' 등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갈등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영풍이 SM엔터 시세 조종에 고려아연이 관여했다는 의혹과 함께 고려아연이 영풍을 공격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 액트와 계약을 체결하고 비용을 지급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양측 간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영풍은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 이상목 액트 대표 등을 고발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은 당사가 영풍을 공격하기 위해 계약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주총회 운영과 소액주주 친화적 안건 발굴을 위한 자문 계약"이라며 "계약 내용을 왜곡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영풍 측에 강력히 유감을 표하며, 이는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영풍의 공격적인 행보가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진입을 시도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풍의 이 같은 주장 제기만으로도 고려아연에 적잖은 부담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양사 간 남아있는 소송까지 고려하면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을 둘러싼 양사 간의 이해관계가 여전히 첨예하다"며 "이로 인해 양측 간 분쟁은 단기간에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