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ONJ 딜레마

2024-11-13

우리가 어떤 실체나 현상을 보고 명칭을 붙이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지칭하는 행위인가 아니면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김춘수의 시 “꽃” 에서는 대상에 대하여 이름을 정의하였을 때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무엇인가의 질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MRONJ(약물관련 골괴사, Medication-related osteonecrosis of the jaw)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모호했고 파편처럼 떠다니던 증상들의 집합이, 세밀한 관찰을 거쳐 하나의 특정 질환으로 정의됨으로써 비로소 질환의 치료와 예후가 생기는 전형적인 예가 바로 MRONJ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의가 계속 변화하면서 질환의 성격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약물관련 골괴사는 2014년에 MRONJ로 명명되기 전에는 2007년 BRONJ (Bisphosphonate-related osteonecrosis of the jaw)라는 이름으로 미국 구강악안면외과학회(AAOMS) position paper에서 정의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때만해도 여러 곳의 position paper에서 ① 비스포스포네이트(BP) 약물과 악골괴사의 직접적인 인과성을 나타내는 “BIONJ” (Bisphosphonate-induced ONJ), ② 악골괴사가 BP때문에 초래되었음이 입증되었으나 직접적인 인과성에 이르지는 못한 것을 의미하는 “BRONJ”, 그리고 ③ 악골괴사가 BP때문에 초래될 수도 있다는 다소 약한 연관성을 의미하는 “BAONJ” (Bisphosphonate-associated ONJ)라는 용어가 혼용되었다. “BIONJ”, “BRONJ”, “BAONJ”는 동일한 질환을 보고도 원인이 무엇인지, 향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지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똑같은 꽃을 보고도 어느 계열이며 어떤 특성인지 의견이 달라서 꽃의 이름을 다르게 붙이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2009년 미국 AAOMS position paper를 작성한 6명 중의 한명으로 포함된 Miami 대학 Marx 교수의 경우, BP와 악골괴사(ONJ) 간의 인과성을 확실히 인정하는 뜻에서 BIONJ(Bisphosphonate-induced ONJ)라는 이름을 고수하였다. 한발 더 나아가, BP 관련 악골괴사 소송에서, BP 약물(Fosamax, Zometa)을 만드는 거대 제약회사(Merck와 Novartis사)의 책임을 묻고자 환자측 변호사를 도와 증인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문에 이 약을 많이 처방하는 내과 선생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2011년에 필자가 미국골대사학회에 MRONJ 치료와 예후에 대하여 포스터 발표하러 갔더니 옆에서 발표하던 나이 지긋한 내분비 내과의사가 나에게 “BRONJ와 BIONJ 중 뭐가 맞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알고보니 그분이 골다공증 관련 문헌을 읽다 보면 항상 마주치는 논문의 저자인 Dr. McClung 임을 알게 되었고, 당시 Marx 교수가 쓴 일부 논문의 논리적인 결함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많은 논문이 나오면서 골흡수억제제 투여후 골괴사가 생기는 비율이 낮아서 약물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나, 그 상관성은 확실하여 -related (“MRONJ”)가 가장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으며, -induced (“BIONJ”나 “MIONJ”)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    

2022년 미국 구강악안면외과학회에서는 8년만에 MRONJ position paper 개정판을 보고하였다. 가장 핵심이 골흡수억제제(BP나 denosumab)를 치과치료 전에 중단하는 것을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position paper 집필진이 [제1안] “각각의 증례별로(case-by-case basis) 결정될 수 있다는 의견”과 [제2안] “골흡수억제제 중지 시 예상되는 부작용에 의한 위험이 투약 시의 이점을 상회할 수 있으므로 절대 drug holiday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의견”으로 반반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골흡수억제제를 중단하지 않았다가 치과치료후에 MRONJ가 생기는 경우(치과의사의 어려움)도 고려해야 하지만, 골흡수억제제를 섣불리 중단하였다가 치과치료후에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이 생기는 경우(내과/정형외과 의사의 어려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2022 AAOMS MRONJ position paper 작성에 참여한 UCLA의 Aghaloo 교수에게 “왜 하필 working group을 6명, 짝수로 구성하여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을 때 결론이 내려지지 않게 만들었나?” 하고 물어보았다. Aghaloo 교수는 보존적 치료 보다도 적극적인 수술이 추천된다는 권고가 만들어질 때에는 별다른 대립된 의견이 없었으므로 염려가 없었다고 한다. Drug holiday 결정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 밖으로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의식한 듯, Aghaloo 교수는 골흡수억제제를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Please do what you need to do, then we will do what we need to do” 라고 한다고 하였다. 즉, 각자의 입장에서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를 선택하여 치료하고, 거기서 생기는 문제는 각자가 치료하자는 뜻인데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나, 또 한편으로는 각자의 치료가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딜레마가 여전히 남아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치과의사가 내과의사의 골다공증 약처방에 대하여 승인할지 말지에 대한 권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과의사가 치과치료를 진행할지 말지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환자 치료 앞에서 결국은 그 치료를 하는 의사가 외로운 책임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그 사실을 인정해야 이러한 딜레마가 해결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을 창조하는 것과 맞먹는 의미가 다가오게 되며, 거기에는 의미를 창조한 이후에 그 의미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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