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건축은 시대를 담는 예술"…건축가 임재용의 시대감각

2025-05-08

[미디어펜=문상진 기자]주유소와 사옥을 동시에 지어야 한다는 서울석유의 조건은 주유소 위에 사옥을 올리는 수직 배치히는 안으로 발전해 ‘옥내주유소’라는 새로운 유형의 풍경을 탄생하게 했다. p-9쪽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교외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주변 환경을 적극 활용하고 사람 동선과 생산물의 동선을 재구성하고 자연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공장 미학을 제안했다. p-19쪽

흔히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시인은 시에 생각을 담고 독자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 그림이나 시를 감상하고 해석한다. 건축가는 어떨까? 건축가를 작가의 영역에 포함시켜 생각한다면 건축가의 생각은 건축물에서 읽을 수 있다.

'건축가의 생각'은 '글로 보여주는 건축작품집'이라는 콘셉트로 사진과 도면으로 구성하는 여느 건축작품집과 달리 건축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건축가의 생각'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은 건축가 임재용이 쓴 '건축가 임재용의 시대감각'이다. 건축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 집을 지었고 어떤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어떻게 자신의 작업에 응용했는지 건축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

저자는 "건축가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반영하는 새로운 유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건축물에 시대감각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흔히 보이는 주유소, 공장, 아파트,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등은 사실 시대감각을 담아내기에는 쉽지 않다. 이유는 까다로운 법규, 특수시설이 갖추어야 할 제약, 무엇보다 경제 논리가 앞서 있기 때문에 건축가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건축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에는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는 유형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주유소, 공장, 오피스, 오피스텔 프로젝트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건축역사이론 연구자인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는 한 신문(조선일보 2013년 10월 26일자)과 인터뷰에서 건축가 임재용을 "사회 변화를 민감하게 지켜보며 건축의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 건축가"라고 했다.

1996년 일산 단독주택 지구에 기존 주택과는 다른 실험적인 형태와 콘셉트의 단독주택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저자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반영한 실험적인 건축물을 선보이고 있다. 다른 점이라곤 당시에는 단독주택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주유소, 공장, 아파트 등 이 땅에 지어지는 건축물 전반으로 스펙트럼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새로운 풍경, 열린 풍경, 공공성의 풍경, 공공성의 풍경을 잇다라는 4개의 주제 아래 저자가 30여 년 동안 진행한 50여 개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단순히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했던 생각,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털어 놓는다.

새로운 풍경, 열린 풍경, 공공성의 풍경

건축가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건축 책은 대개 건축물이 지어진 연도별로 나열하거나 주거, 상업시설, 오피스처럼 건축 유형별로 나누어 구성하는데 이 책은 이런 틀에서 벗어나 저자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주제별로 구성했다. 새로운 풍경, 열린 풍경, 공공성의 풍경, 공공성의 풍경을 잇다라는 4개의 주제는 다시 3~4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구성된다.

책은 주유소 이야기로 시작한다. '새로운 풍경'이라는 첫 번째 주제에서는 저자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먼저 '진화하는 주유소'라는 소주제 아래 3개의 주유소와 수소차 충전소소, 전기차 충전빌딩이라는 총 5개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저자는 10여 년 동안 몇 개의 주유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동차 문화, 사회 변화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건축가인 자신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었으며 자신에게 “풍경의 연결과 새로운 유형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었다”고 고백한다.

다음 소주제인 ‘새로운 공장 미학’에서는 건축가의 작품 목록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공장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공장은 대개 여러 제약과 생산 제품의 특수성으로 인해 몇몇 정해진 사무실에서만 설계한다. 저자는 사람은 배제된 채 생산물 중심으로 구성되는 공간 구성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고 사람과 생산물의 동선을 구분해 더욱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공장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공장 대부분이 녹지와 가깝게 있다는 점을 역이용해 자연을 끌어들여 오가며 혹은 쉬는 시간에 잠시라도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3개의 오피스빌딩은 '테라피스'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어로 묶었다. 땅(terra)과 오피스(office)를 결합한 말로 땅을 밟고 자연과 함께 생활한다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특별한 일처럼 되어버린 현대인에게 테라스를 통해 땅을 밟고 자연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저자가 제안한 테라스는 동료들과 교류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도시의 풍경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시의 구성요소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대'에서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애완견을 위한 화장장 및 납골당과 함께 애견호텔, 애견 전용 풀빌라 등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애견 복합시설을 이야기한다.

'열린 풍경'에서는 주거와 교회, 노인요양시설, 어린이집과 같은 우리 생활의 전반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이야기한다. '비움으로 만들어낸 공공성'이라는 소주제에서는 임대수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오피스텔을 이야기한다. 사이사이를 비워 공공에게 개방하고 입주자들에게 쉼의 공간을 제안한 서울 중구 신당동의 DUO 302를 소개한다.

소개한 3건 모두 무산되었지만 단지를 허물고 이웃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저자를 포함한 여러 건축가가 함께 재안한 안은 아파트단지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지역사회와 공존하기'에서는 지역사회와 공존을 모색하는 교회, 안전 문제로 지역사회에 문을 활짝 열 수 없는 한계를 가진 것으로 이해되던 노인요양시설과 어린이집이 어떻게 지역사회와 공존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열린 거주 풍경'에서는 한국에 설계사무실을 열고 남다른 디자인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된 주택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획일화된 신도시의 필지 분할과 난개발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설정한 지구단위계획으로 생긴 거주자의 불편함과 외부와 단절될 수밖에 없는 단독주택을 디자인으로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공공성의 풍경'에서는 다양한 도시 제안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우리 도시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 도시를 대하는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공공성의 풍경을 잇다'에서는 요즘 저자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마다 가장 우선시하는 '공공성'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로젝트에 임할 때마다 공공성 지도와 공공성 지수를 따지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위해 건축가로서 실천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실행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앞으로 내 작업의 이정표는 정해져 있다. 빠르게 진화하는 사회 변화를 감자하는 '시대감각'으로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공공성의 풍경을 이어나가고자 한다"고 다짐한다. 인간과 공존하고 인간을 생각하는 저자의 건축은 현재진행형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