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린 삼성-1] '두뇌'가 혁신을 주도한다…이재용 리더십 강화, 컨트롤타워 복원

2024-10-23

사법리스크,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간섭으로 경영활동 위축

컨트롤타워 부재로 계열사 유기적 경영 한계…'빅딜'도 7년째 실종

‘삼성 위기론’이 경제‧산업계를 휩쓸고 있다. 삼성의 캐시카우이자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는 기술 경쟁력 약화와 그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스마트폰‧가전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발휘하지 못한다. 1등 삼성의 DNA가 희석되고 조직 문화는 나태해졌다는 외부의 지적과 내부의 자기반성이 잇따른다. 위기를 더 큰 도약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재용 회장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 구축과 그를 뒷받침할 그룹 컨트롤타워의 부활, 핵심 사업인 반도체 경쟁력 복원, 6G‧바이오‧전장 등 신성장 동력 육성 등 전방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편집자 주]

덩치가 큰 조직일수록 수장의 전략적 판단이 조직 말단까지 미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대두된 ‘삼성 위기론’의 가장 큰 배경으로 ‘리더십 약화’가 꼽힌다. 이재용 회장은 카리스마가 희석됐고, 그를 뒷받침할 그룹 컨트롤타워도 없으니, 위기 돌파가 됐든 성장이 됐든 강력한 추진 동력을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이재용 회장에겐 지나치게 겸손한 모습이 보인다. 창업 1, 2세대 기업인들은 물론,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비교해도 조직을 강력하게 휘어잡을 카리스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재계에 오랜 기간 몸담은 한 전직 대기업 임원의 평가다. 이 회장의 이런 모습이 그의 성품적, 역량적 한계 때문일까.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병환으로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 이후부터 이재용 회장은 수없이 풍파에 시달렸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수시로 법원에 불려갔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필요성이 수없이 제기되고,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으로 법적 걸림돌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등기 임원의 신분을 유지하는 것도 사법리스크를 감안한 일종의 ‘망설임’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며 수없이 고개를 숙이고, 겸손을 강요당하는 총수가 ‘신경영 선언’과 같은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 달성을 위해 조직을 결집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그동안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으로 수 년간 시달리다 수십 가지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이 났는데, 검찰이 항소하면서 다시 재판이 장기화되고 있다”면서 “이재용 회장이 경영활동에 집중할 여지를 주질 않는데 어떻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고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겠느냐”고 지적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지나친 간섭도 이 회장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없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차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을 후원한 게 문제가 돼 적폐로 지목됐고, 삼성을 적폐로 몰았던 문재인 정부도 코로나19 사태 관련 마스크 수급대책, 일본과의 분쟁 관련 소부장 육성, 경기침체‧취업난 해결을 위한 투자‧고용창출 등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이 회장을 소환했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이어지는 해외순방은 물론, 국내 경기활성화나 지역경제 재건 등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 회장이 단골로 소환된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은 그나마 개별 일정을 이유로 빠지기도 하지만, 이 회장은 재계 서열 1위 기업 총수라는 상징성 때문에 거의 꼬박꼬박 참석해야 하는 형편이다. 조 교수는 “재판 출석도 버거운데,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불려 다니면 경영은 언제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삼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병철 창업회장 당시의 비서실을 1998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구조조정본부로 재편한 이래 삼성그룹은 총수를 보좌하며 계열사들을 유기적으로 컨트롤하고 경영전략을 제시하는 조직이 존재했다. 구조조정본부는 나중에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미전실)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핵심 기능은 유지했다.

하지만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미전실이 ‘적폐의 중심’이라는 비난에 휩싸이며 해체됐고, 이후 지금까지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사실상 반도체(DS)와 스마트폰‧가전(DX)라는 거대한 두 회사의 결합이고, 그 외에 수많은 전자 부품 계열사들과 전장‧바이오 등 신사업 계열사들이 삼성그룹 내에 존재한다”면서 “이들을 총수와 비서실 정도의 조직으로 컨트롤한다는 것 자체도 무리고, 위기 상황에서 혁신을 꾀할 때 혼란을 최소화할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통상 5~10년 주기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전실 해체 이후 7년 간의 컨트롤타워 부재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시각도 현실성이 있다. 반도체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파운드리에 대한 과도한 자원 집중과 메모리 부문의 HBM 사업에 대한 오판도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있었다면 사전에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삼성에 새 성장동력을 부여할 만한 ‘빅딜’이 없었다는 것도 컨트롤타워 부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미전실 해체 이후의 공백과 일치한다.

문제점과 해법은 명확해 보이지만,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 강화든 미전실의 부활이든 외부 압력에 부딪칠 여지가 남아있다.

조 교수는 “문제의 발단은 정치권과 검찰까지 나서 들볶아 대며 이재용 회장이 경영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미전실을 강제로 해체하게 만든 것”이라며 “이재용과 삼성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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