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도서 패션기업인으로…"비전문성이 되레 경영에 도움됐죠" [CEO&STORY]

2025-12-10

이선효 네파 대표는 ‘보브’ ‘라코스테’ ‘갭’ 등 여러 패션 브랜드의 실적 개선을 이끌며 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패션 커리어 시작을 ‘인사 배치 실패작’이라 표현했다. 경영학도 출신으로 첫 직장인 삼성물산에 입사했을 때 옷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그가 의류 부서에 배치되자 주위에서 우려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비전문성’이 오히려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했고 그를 차별화된 패션 경영인으로 만들었다.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감성’은 모호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하자’는데 도대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얼마나 많은 것이 ‘많이’인지 답이 없었죠. 저는 그 막연한 감성을 숫자로 객관화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 대표는 삼성물산 시절부터 패션에 ‘숫자’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주재원 시절, 수출과 수입 업무의 밸런스를 맞추며 익힌 글로벌 감각은 훗날 그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여성복 브랜드 ‘보브’를 심폐 소생하는 무기가 됐다.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보브를 맡은 그는 디자이너의 감에만 의존하던 관행을 깨고 상품기획(MD)과 영업에 집중했다. 이 대표는 “여성복은 ‘감성’ 중심이라 디자이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출 등락 폭이 컸다”면서 “감성에 ‘논리’를 도입해야 했다. 감성은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보브의 콘셉트와 지향점, 매장별 예측 판매 수량 등을 논리적으로 정립시킨 것이다.

예컨대 그는 브랜드 콘셉트인 ‘헬시 섹시’를 정의하며 당시 섹시 아이콘이던 이효리의 트렌디함 대신 김혜수의 절제된 관능미를 타깃으로 설정해 내부의 시각을 통일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억 원대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은 2년 만에 350억 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 역시 20억 원 적자에서 1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이후에도 매년 영업이익이 증가하며 2년 후엔 50억 원 흑자를 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모두가 포기하려고 했던 보브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이후 여성복 브랜드 ‘지컷’도 인수했다”며 “나중에는 국내 사업 확장을 넘어 수입 브랜드 ‘갭’까지 맡아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대구 ‘모다아울렛’ 창립 멤버로도 참여했다. 모다아울렛은 국내 아웃렛 시장의 효시로 꼽힌다. 이 대표는 “당시 창고 같은 곳에 재고를 쌓아두고 파는 게 전부였다”며 “요즘 같은 아웃렛이 없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브랜드가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저가에 팔 수 있는 장소, 동시에 고객들은 편안하게 쇼핑하는 장소를 제공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미국 우드베리커먼이 떠오르는, 백화점스러운 아웃렛이 국내에 최초로 등장한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선구안은 적중했고 모다아울렛의 성공은 이후 대기업들이 아웃렛 사업에 뛰어드는 기폭제가 됐다.

동일드방레 대표로 재직하던 당시 ‘라코스테’를 국민 브랜드 반열에 올린 전략도 파격적이었다. 당시 전통 캐주얼패션 시장은 빈폴과 폴로가 점유율 65%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메이저와 마이너로 구분된 시장 프레임에서는 당시 시장점유율 16%에 불과했던 라코스테가 입지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면서 “기존 틀을 깨고 ‘아메리칸 캐주얼’ 대 ‘유러피언 캐주얼’이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라코스테를 단순한 피케 셔츠 브랜드가 아닌 몽클레르 같은 고급스러운 ‘유러피언 캐주얼’로 포지셔닝하고 한국 전용 겨울 다운재킷을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라코스테 매출은 800억 원대에서 200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라코스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고민하던 이 대표가 2016년 네파행을 택한 것은 “도전할 만하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아웃도어 시장이 급격히 꺾이던 시기 그는 또 한 번 판을 흔들 기회를 봤다. 이 대표는 “당시 아웃도어 의류가 촌스럽다는 인식 때문에 성장세가 꺾였는데 기능성이 들어간 캐주얼 의류로 구도를 바꾸면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언제나 시장의 구도를 바꾸고 새로운 땅을 넓히는 데 주력해온 만큼 네파에서는 ‘스타일리시 아웃도어(디자인과 기능성을 모두 겸비한 제품)’를 통해 리브랜딩 성과를 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이 대표는 취임 이후 ‘코트형 다운패딩(구스코트)’ 제품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패딩은 편한 의류이지만 격조 있는 자리에 입고 가기 어렵다는 지점을 파고든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만들고 있지만 네파는 계속 차별화된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아르테·벤투스 같은 프리미엄 라인업이 탄생했고 올해는 11월부터 FW시즌 제품 매출 신장률이 두 자리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