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의료기기 실적 추락…'의정갈등' 여파

2025-05-06

외국계 의료기기 기업 상당수가 지난해 유례없는 부진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경영난이 심화하며 대형 장비 도입을 미룬 것이 부진 원인으로 꼽힌다. 의정갈등 여파가 그동안 견고했던 외산 의료기기 산업 지형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멘스헬시니어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한국올림푸스 등 주요 외국계 의료기기 기업의 2024년도 매출이 전년 대비 10% 내외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 의료장비 수요가 급감하며 재고까지 큰 폭으로 증가, 수익성까지 악화됐다.

영상진단 1위 기업인 독일 지멘스 자회사 지멘스헬시니어스는 2024년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매출 6335억원으로, 전년 대비 7.2% 감소했다. 회사 연간 매출이 역성장한 것은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수술용 시스템과 장비 등을 공급하는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2024년 매출이 전년 대비 10.4% 하락한 2698억원을 기록했다. GE헬스케어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 2757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2023년(2023년 4월~2024년 3월) 2300억원 매출을 기록한 올림푸스한국도 지난해 매출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감소 규모는 집계 중이지만, 이 회사가 역성장한 것은 거의 13년 만이다.

진단장비와 관절의료기기 시장 강자인 한국애보트, 한국스트라이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하락은 막았지만 전년 대비 성장율이 0.2%, 1.1%에 그쳤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 여파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해 외래, 수술 건수가 급감하며 병원 경영난이 심화됐고 자연스럽게 의료기기 장비 도입도 대거 미뤄졌다.

지멘스, 존슨앤드존슨, 올림푸스 등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영명상(MRI), 초음파진단, 내시경, 수술실 장비 등 고가 의료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최대 95% 이상을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는데, 대형병원 경영난 심화로 유례없는 실적 하락을 기록하게 됐다.

실제 대형병원 발주가 미뤄지면서 외국계 의료기기 기업 재고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지멘스헬시니어스와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재고자산은 각각 783억원, 583억원으로 전년 대비 14.8%, 8.8% 증가했다. GE헬스케어코리아 역시 전년 대비 21.8%나 재고가 늘었다. 한국애보트와 한국스트라이커코리아는 매출 역성장은 피했지만 재고는 각각 20.5%, 12.8%나 늘었다.

외국계 의료기기 기업은 올해 실적 회복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부진 원인이 외부 환경인 만큼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은데다 인원 충원도 어려워 여전히 영업이 쉽지 않다. 대형병원들도 경영난 악화로 여전히 예산을 보수적으로 집행해 수천만원이 넘는 외산 의료장비 도입을 최대한 미룰 가능성도 높다.

한 외국계 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의정갈등 해소 실마리가 보이지만 병원 인력이나 경영 상황은 여전히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일단 관망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면서 “실적 악화 원인이 외부에 있다 보니 영업력 강화나 신제품 출시 등 전략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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