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무 죄 없으라" 위로에 MZ 오열…고전 재해석 뮤지컬 ‘홍련’ 매진사례

2024-10-16

1990년생 작가가 고전을 재해석한 뮤지컬에 MZ세대가 열광했다. 오는 20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초연 중인 창작 뮤지컬 ‘홍련’이 연일 매진사례(객석점유율 99.01%, 이하 공연사 13일 집계)다. 관객의 90.8%가 여성, 연령별로는 20~30대가 80.5%에 달할 만큼 젊은 여성 관객 호응이 뜨겁다. 남은 공연 티켓도 대부분 동이 났다.

가정폭력으로 언니를 잃고 근친살해 혐의로 사후 천도 법정에 서게 된 홍련(한재아‧김이후‧홍나현, 이하 캐스팅)과 재판관 바리(이아름솔‧김경민‧이지연)의 재판과정을 콘서트형 뮤지컬로 구성했다. 조선 실화 바탕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 딸이란 이유로 부모에 버려진 7번째 공주가 신과 인간 세상을 잇는 신이 되는 내용의 ‘바리데기’ 설화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록음악에 거문고 기반의 국악을 접목해 전통 씻김굿 형식을 빌려온 폭발적 무대가 공연시간 90분간 속을 뻥 뚫는다. 진실이 밝혀지는 후반부는 “폭풍 오열하며 나를 돌아봤다” “폭력 피해자의 자기 혐오를 구원한다” 등 ‘손수건 필참’이란 후기가 잇따른다. 인터파크 예매앱에 1000개 이상 달린 관람 평점은 9.9(10점 만점).

"우리나라 왜 사또 찾는 처녀귀신 유독 많을까"

“왜 우리나라는 유독 한을 풀어달라고 사또를 찾아가는 원귀담이 많을까”란 의문에서 출발했다는 배시현(34‧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협동과정 전문사 재학) 작가를 지난달 전화 인터뷰했다.

“꼭 누군가 죽은 다음에 문제를 인식하는 요즘 청년세대의 사회적 재난 사건들도 처녀 귀신 전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다. 아동학대 피해자였던 지인을 지켜보며 가정폭력으로 죽은 장화·홍련과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바리데기를 접목하게 됐다. “다시 조사하다 보니 바리데기도 가정 학대 피해자더군요. 바리데기 설화에서 강조돼온 효(孝)라는 교훈이 현대 가치관에선 납득 안 됐죠.” 자신을 버린 아버지마저 구하는 바리데기의 의미를 “타인의 아픔을 내 것처럼 아파할 수 있는 인물”로 확장하는 과정을, 홍련의 한풀이와 더불어 극의 뼈대로 삼았다.

-또래 여성 관객 호응이 크다.

“창작 과정에선 세대보다 아동학대 피해에 초점 맞췄다. 친부에게 아동학대를 당한 지인이 자신의 자식은 손찌검 한번 않고 키운 마음이 인상 깊어 아동학대에 대해 조사하게 됐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여전히 가해자에 사랑 받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동시대 화두인 젠더 주제를 싣다 보니 우리 시대 딸들에게 와 닿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언니 장화의 죽음에 대한 홍련의 죄책감이 비중 있게 묘사되는데.

“아동학대의 물리적 피해만큼, 살아남은 형제들이 갖는 고통과 죄책감이 크다. 이런 정서적 학대에 대한 인식이 아직 얕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음악은 뮤지컬 ‘데미안’ ‘한성의 이발사’ 등을 작업한 박신애 작곡가가 맡았다. 2022년 CJ문화재단 뮤지컬창작자지원사업 ‘스테이지업’ 기획개발에 발탁되며 이번 초연이 성사됐다. ‘마옥균 퀴즈쇼’ ‘별을 위하여’ 등 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해온 배 작가가 뮤지컬에 도전한 이유는 극 전체를 거대한 씻김굿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맨 처음 넋을 부르는 단계, 음악‧춤으로 넋을 달래며 혼백의 말을 듣고 혼백과 소통하는 단계, 한을 씻고 천도하는 단계로 극을 구성했다. 홍련은 호소하는 록 넘버에 맞는 하이톤, 바리데기는 단단한 음색의 장신 배우를 이미지에 맞춰 캐스팅했다. “뮤지컬을 잘 몰라서 용감하게 배짱을 내봤죠. 음악의 힘, 배우들의 표현이 극을 살렸습니다.”

"너 아무 죄 없으라" 가사에 MZ 관객 오열

“저 같은 애들이 관아에 가서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듣게 하려면 죽어야 된다”고 냉소하던 홍련은 바리를 통해 왜곡된 기억을 더듬으며 학대의 진실을 마주한다. ‘너 아무 죄 없으라/아이야 아이야’란 가사의 홍련‧바리 듀엣곡 ‘사랑하라’ 대목에선 어김없이 객석에서 흐느낌이 커진다. “개막하고 일주일 간은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100명 관객 중 한명한테라도 상처가 되면 어쩌지, 하고 관객이 울 때마다 불안했다”는 배 작가는 “작품이 관객에 잘 와 닿은 것 같아 다행”이라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학대 피해자들에게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가장 말하고 싶었죠. 아이가 부모 사랑을 원하는 건 너무 당연한데, ‘부모가 그때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의문을 갖다가 자신이 미워진다면 그것마저 당신 탓이 아니라고요.” 이와 함께 그는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듣는다는, 어렵고 귀한 능력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홍련’은 망자들의 이야기라 그들이 억울하게 죽었어도 세상은 그대로라는 답답함을 느끼실 수 있죠. 그런 만큼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약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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