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살기 위해서라도 이 남성성은 해체돼야 한다”

2025-07-10

“K-Men, 성평등으로 동행!”

9일 저녁 서울 동작구 서울가족플라자에서 ‘한국 맨인게이지네트워크(K-Men·케이멘)’ 발족식 겸 토크쇼가 열렸다. 맨인게이지 얼라이언스는 성평등을 지지하는 남성과 남성을 성평등의 주체로 초대하기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전세계 90여개국 시민단체가 가입돼 있다. 이날 자리는 국내 12개 단체가 맨인게이지 가입을 완료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황금명륜 젠더교육 플랫폼 효재 국제협력사업단장은 “플랫폼 효재,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페미니즘교육연구소 연지원이 모여 동료 단체를 초대하기로 의기투합했고 지난해 8월 8개 단체가 모여 한국 맨인게이지 결성을 결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남자 이미지를 다시 써보자는 뜻에서 (이름을) ‘K-Men’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남성 해방>(원제 Why Feminism is Good For Men) 저자 옌스 판트리흐트가 축사를 맡았다. 그는 “맨인게이지는 남성 운동이 아니라 젠더정의를 위한 페미니스트 운동이다. 맨인게이지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다른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진정한 지구적 교차성 운동”이라고 말했다. 또한 “K-Men이 한국의 소년과 남성들이 가부장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인간다움을 받아들이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성 해방’ 옌스 판트리흐트 “남성과 페미니즘은 서로에게 필요하다”

이어진 ‘K-Men을 말하다’ 토크쇼에서는 페미니스트 남성 당사자 5인이 남성성을 성찰하고 새로운 남성성을 제안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패널들은 지금과 같은 남성성이 남성들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증명과 변명> 저자 안희제씨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남성의) 자격이 지금의 정치·경제 맥락에서는 더는 취득이 어려워졌다. 이 간극에서 비롯되는 좌절이나 분노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소수자 혐오와 폭력으로 굴절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상균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장은 남성들이 ‘남성다움’에 갇혀 슬픔이나 고통, 공감 같은 인간의 기본적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점을 언급했다. “불행히도 남성들은 교감해 본 적이 없고 교감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면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달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헛헛함(르상티망)이 차곡차곡 쌓여 손쉽게 화를 낼 수 있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에게 화가 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고상균 소장은 “남성들은 자기가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를 만들어 놓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감정도 날아가고 인간으로서 배제되는 것이 아닌가. 50여년을 그렇게 밀어부치면 끝내 자기밖에 남지 않아 자기 파멸로 간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성의 정점은 자기파멸이다. 남성이 살기 위해서라도 이 남성성은 해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서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운영위원은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너 여자냐’, ‘게이냐’, ‘장애인이냐’ 묻는 일이 빈번했다. 여자, 게이, 장애인이 남성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반대로 무엇이 남성성에 속하는지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는 “남학생에게 남성성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여성에 대한 이성애적 성욕을 주로 답한다”고 덧붙였다.

젠더 기득권을 가진 남성이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한 성찰도 이어졌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에서 활동하는 이한씨는 “이른바 ‘속죄 페미니즘’이라고 자주 부른다. ‘저는 뒤에서 뒷바라지 해야죠’ 같은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뒷바라지를 빙자하며 결국 일선에 나서는 누군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페미니스트가 성찰하며 활동하는데, 실수를 하면서도 한 발자국 나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찬서 위원도 “앞으로 대안적 남성성을 실천할 때는 분명히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남이지’ 이러면서 자기 비난을 하지 말자고 부탁하고 싶다. 잘못을 책임지려는 고민은 필요하지만 모든 고민과 과정을 혼자서 하려고 끙끙거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토크쇼 말미에는 ‘미래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남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란 고민이 나왔다. 학내 페미니즘 동아리 ‘도전 한남’에서 활동하는 이호씨는 “(과거) 남자답지 않은 언행을 하는 친구들을 비난하고 까내리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고 지켰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의 한국 남성 모습은)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돌봄일 수도 있고 연애일 수도 있다. 위계적 관점에서 탈출해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희제씨는 “이미 유지되기 힘들어진 지금의 한국 남자는 불가피한 변화를 만들 것이다. 돌봄이 부재한 지금 상황은 전 사회적 위기이기 때문에 미래의 한국 남자는 꼭 ‘돌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고상균 소장은 “공감을 통해 연대할 수 있는 남성이면 좋겠다. 개인적·사회적 부분에서 아픔을 아픔으로 연대하는 마음을 더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족식을 시작으로 K-Men은 9월 양성평등주간에 ‘소년과 남성의 날’을 선포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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