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안신애의 새 EP ‘Dear LIFE(디어 라이프)’의 타이틀곡 ‘South to the West(사우스 투 더 웨스트)’에서 ‘South(남)’는 안신애가 거주 중인 제주도를, ‘West(서)’는 활동 지역인 서울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면 제주도는 남부에, 서울은 서부에 위치한 것이 맞다. 하지만 ‘South to the West’라는 제목은 ‘남부에서 서부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준은 출발점인 제주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울은 제주도보다 살짝 동쪽(East)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확히는 제목과 가사가 ‘South to the West’가 아니라 ‘South to the East’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극히 T스러운 질문이 나오자, 안신애는 흠칫 놀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어 그는 “‘South to the West’라는 가사가 주는 어감이 있다. 또 지역이나 방향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이미지가 있다. 미국으로 치면 (블루스가 탄생한) 남부와 (Funk가 유행한) 서부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제주와 서울을 사우스, 웨스트로 표현했다”라며 이 난제를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
이처럼 T발스러운 질문마저도 음악으로 승화하는 안신애와 지난 1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Dear LIFE’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단 ‘Dear LIFE’는 앨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난해 7월 발매한 ‘Dear City’와 이어지는 연작이다.
안신애는 “첫 번째 ‘Dear City’는 도시의 삶에서 겪는 애환과 아픔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번 ‘Dear LIFE’는 치유에 관한 내용이다. 깨끗하게 비운 다음을 표현하려 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은 대부분 몇 달, 몇 년을 품고 있던 곡이고, 타이틀곡 ‘South to the West’도 거의 1년이 걸린 노래다”라고 설명했다.
또 ‘South to the West’는 처음부터 타이틀곡으로 점찍을 곡이기도 하다. ‘치유’라는 앨범의 메시지에 걸맞게 그루브한 사운드와 당당한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안신애는 “작업 초기부터 이 곡을 타이틀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발라드를 기대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나는 이런 그루비하고 비트 있는 신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신나면서도 나의 가창과 소울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또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South to the West’의 제목은 제주와 서울을 의미한다. 이에 뮤직비디오 역시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촬영했다.
안신애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했고 시안 작업도 내가 했다. 이 뮤직비디오는 원하는 그림이 정확히 있었다. 자연과 도시 두 가지 모습을 담고 싶었고, 자전적 모습이었으면 했다.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느낀 삶의 다양성 가능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정말 많은 분과 소통하면 만들었다. 뮤직비디오 리터칭 하시는 분이 K팝 뮤직비디오 작업을 많이 한 분인데, 이런 뮤직비디오 처음 본다고 했다더라”라며 자신의 의견이 강하게 들어간 작품임을 알렸다.
내용도 재미있다. 뮤직비디오에는 안신애가 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낚싯배에 승선해 물고기를 잡는 모습 등도 포함됐다.
안신애는 “실제로 제주도에서 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 제주도의 삶을 표현할 때 꼭 낚싯배 장면을 넣고 싶었다. 친한 친구가 어부인데 뱃일을 가면 선장님이 물고기를 하나씩 줘서 그걸 회로 먹거나 요리해 먹었다. 그런 경험이 좋게 남아있고, 서울과 가장 상반되는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제주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는 장면과 귤밭에서 귤을 따는 모습이 어울릴 것 같았다”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South to the West’ 뮤직비디오의 또 한 가지 재미라면 화사의 깜짝 출연이다.
안신애는 “화사는 내가 먼저 출연을 물어봤다. ‘나라는 가수’의 촬영 중에 화사에게, ‘혹시 내 뮤직비디오에 나와줄래?’라고 물었는데 ‘당연하죠’라며 흔쾌히 수락을 해줬다. 출연뿐만 아니라 커피차도 보내주고 퍼포먼스 조언도 많이 했다. 아티스트로서의 태도도 많이 배웠고 정말 고마웠다”라고 화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데다가 주변의 도움까지 더해진 ‘Dear LIFE’인 만큼, 안신애는 분명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단, ‘성공’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안신애는 “그룹 생활을 10년 정도 하다 번아웃이 왔고, 코로나로 공연이 다 중단됐다. 그때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활동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굉장히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고 부담이 되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 시기에 제주도로 이주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음악만 했는데, ‘음악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제주도에서 귤 따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목공, 요리 다양한 분야를 시도했다. 그렇게 열심히 이뤄보려고 하던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나니까 다시 재순환이 되더라”라고 당시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재순환을 통해 안신애가 깨달은 것은 ‘성공에 대한 불안’과 ‘성공을 바라는 희망’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안신애는 “이번에는 맹목적인 성공을 바라기보다 내가 가진 아티스트로서의 가치, 내 가치를 믿고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것을 해보고 싶다. ‘맹목적인 성공’이라는 말을 조금 정정 하자면 ‘성공에 대한 불안’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성공을 바라보며 노력하는 것은 맞는데, 올려놓지 못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물론 지금도 대중 가수로서의 성공, 수치적 성공에서 멀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솔직히 가능하다면 조회수도 잘 나오고 순위도 높았으면 좋겠다. 내가 참여한 곡의 성적이 좋았던 적이 있는데 다 내가 직접 발표한 곡이 아니라 다른 가수에게 준 곡이었다. 그 지점은 내 이름으로 찍고 가고 싶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위해 노력하는 건 불안과 좀 다르다. 희망과 불안의 차이다”라고 긍정적이고 견실한 가치관을 드러냈다.
더군다나 지금 안신애에게는 피네이션이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실제 이날 인터뷰에 앞서 안신애는 제주도에서 싸이와 만나 피네이션에 합류한 스토리를 웹툰으로 제작해 취재진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만큼 피네이션과 싸이를 믿고 있다는 뜻이다.
안신애는 “그 시기가 아무도 나를 가수로서 찾지 않을 때였다. 작곡가로서 찾는 연락은 가끔 있었는데, 싸이도 그랬다. 그래서 곡을 써서 데모를 보냈는데, 돌아온 연락은 ‘네가 가수를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영화 같은 스토리다. 내 가치를 인정받은 소중한 기회여서 그렇다. 싸이를 직접 만나서 내 노래 들은 소감을 듣고, 이 사람이라면 내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싸이에 신뢰를 보냈다.
피네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안신애는 “지금 순간순간이 다 새롭고 재미있다. 피네이션 들어와서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소속감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 같다. 직원들과 일을 하는데 너무 재밌더라. 이렇게 조직에 들어와서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사람들과 프로젝트 만드는 기쁨이 크다”라고 기뻐했다.
잊고 있었던 가수로서의 열정에 다시 불이 붙었고, 이 불길이 계속해서 타오르게 만들 연료를 넣어줄 든든한 배경까지 갖추게 된 안신애이기에,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의욕도 대단했다.
안신애는 “가지고 있는 곡이 많다. 이번에 EP로 낸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정규를 내기보단, 좀 더 콤팩트하게 다발적으로 내고 싶었다. 회사분들과 상의해서 자주 컴백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음 앨범도 정해놨다. ‘Dear’ 시리즈는 조금 더 나중에 나올 예정이고, 다른 앨범 하나가 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다. ‘노래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프로젝트다. 한강에서 4시간 동안 11명의 손님을 만나서 11곡을 만들었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아있고, 다 발매하려고 한다. 일단 여기까지 구체적인 목표로 세워 뒀다”라고 다음 앨범에 대한 힌트를 남겼다.
이에 자연스럽게 연작으로 진행되고 있는 ‘Dear’ 시리즈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일단 ‘Dear’ 시리즈는 안신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기고, 앨범마다 ‘키워드’가 존재한다. 첫 번째 ‘Dear City’는 ‘애환’, 두 번째 ‘Dear LIFE’는 ‘치유’다.
안신애는 “내 인생에는 우여곡절이 많다고 생각한다. 도시라는 한정적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도시의 풍경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도시는 내가 선택한 환경이 아닌 반면, 제주도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었다. 그 환경을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 치유하고자 한 것이었다”라고 각 앨범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창작을 하면 주변 환경을 관찰하게 된다. 사람 사는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 모두 다 힘들지 않나. 모두 각자의 애환이 있고, 숙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름대로 힘들었던 우여곡절들을 잘 이겨내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다른 분들도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앨범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렇다면 ‘Dear’ 시리즈의 세 번째 키워드는 무엇일까. 안신애는 ‘누림’이라고 표현했다.
안신애는 “치유 다음은 ‘누림’이라고 생각한다. 치유는 예를 들면 자동차에 아무 쓸모 없는 돌덩이를 뒷좌석에 가득 싣고 다니던 걸 하나씩 버리고 치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땐 온전히 차 안의 모든 공간을 누릴 수 있다. 내가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Dear’ 시리즈의 맥락이 비워내고 확보한 여유 공간을 더 잘 쓰려는 것이다. 그 여유가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마음의 빛깔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세상일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당시 안신애는 ‘누림’ 대신 어감이 좋은 다른 단어의 추천을 받는다고 했다. 유사한 의미로는 ‘향유’가 많이 쓰이고, 의미는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해소’, ‘해방’ 등도 어울려 보인다.)
이와 같은 안신애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그녀의 음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재능 넘치는 가수의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또 좋은 음악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제시해 주기도 한다. 안신애도 이를 경험했고, 이제는 자신의 음악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안신애는 “나는 ‘Dear LIFE’가 누군가에게 의미를 갖는 앨범이면 좋겠다. 이 앨범을 만들면서 성장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음악을 한창 꿈꿀 때 많이 들었던 장르와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로린 힐(Lauryn Hill)이나 앨리샤 키스(Alicia Keys) 같은,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 음악을 듣는 분도 내가 느낀 삶의 가능성, 새로운 삶을 환영하는 그런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라고 기원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