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밀레니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의 무대를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가 채우고 있었다. 이반 피셔(Ivan Fischer·1951~ )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Natalie Dessay·1965~ )가 투혼으로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 오르고’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공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건, 극장의 천장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대로 품고 있던 또 하나의 ‘마술피리’! 그것은 바로 샤갈(Marc Chagall·1887~1985)의 작품 안에 있었다.
발레나 오페라를 보지 않더라도 파리에 간 수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가르니에를 방문한다. 이 오페라 극장은 나폴레옹 3세때 공모를 통해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 1828~1898)가 당선된 후 14년간의 공사를 거쳐 1875년 개관했다.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1868~1927)가 쓴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도 볼만하지만 이 오페라 극장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샤갈의 천장화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작품을 올려다 보고 있자면, 19세기 절충양식 건축과 20세기 샤갈의 작품이 어떻게 조우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극장이 문을 연지 한 세기 정도 지난 1960년,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1901~1976)는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를 두고 위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샤갈의 천장화 스케치였다. 그는 1954년 샤갈에게 극장의 천장화를 의뢰했고 작가는 스케치를 완성했지만, 위원들은 벨 에포크 시대의 소중한 유산에 유대인 화가의 현대적 작품을 들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말로는 자신의 안목과 판단을 믿고 모두를 이해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1964년 9월 23일 프랑스 파리 오페라 극장은 완성된 샤갈의 천장화를 세상에 공개하게 된다. 고색창연 그 너머 새로운 감각을 포용하는 한 장면이다.
이렇게 샤갈은 그의 나이 일흔 일곱에 화업의 꽃이 만개한 듯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천장화는 샤갈의 음악 가득한 삶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1908년 전후 샤갈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만남은 그의 작품에 음악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가 된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청년이었던 샤갈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즈반체바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당시 저명한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였던 레온 박스트(Leon Bakst, 1866~1924)의 제자가 됐다. 박스트는 화가이기도 했지만 무대에서 그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 그는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의 주요 무대를 수 만가지 색채로 향연을 펼치며 무대 미술계의 독창적인 예술가로 남았다. 박스트는 ‘세헤라자데(Scheherazade·1910)’ ‘불새(The Firebird·1910)’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et Chloe·1912)’ ‘목신의 오후 (L’Apres-midi d’un faune·1912)’ 등의 작품에서 무대 장치와 의상 디자인을 맡아 무대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샤갈은 박스트의 수많은 작업에서 조수로 일하며 예술가로서 자신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빛을 머금은 색채를 체감하며 샤갈이 음악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들이다.
샤갈 또한 무대 미술과 의상 디자인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어, 적지않은 작품을 남겼다. 2017년 LACMA에서 열린 ‘샤갈, 무대 위의 판타지’는 그의 독창적인 무대 디자인을 체감할 수 있는 전시회다. 샤갈은 라흐마니노프의 ‘알레코(Aleko·1942)’, 스트라빈스키의 ‘불새(The Firebird·1945)’,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Daphnis et Chloe·1959)’등 발레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뉴욕 링컨센터 개막을 알린 모차르트의 ‘마술피리(The Magic Flute·1967)’등 오페라 무대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의상을 만들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샤갈의 벽화 두 점이 음악과 함께하고 있다.
다시 샤갈의 천장화로 돌아와 천천히 살펴보자. 이 그림 속에는 샤갈이 작업했던 음악가들 외에도 베토벤, 드뷔시, 차이코프스키, 바그너, 무소르그스키, 라모, 베를리오즈 등 총 열 네 명의 음악가와 그들의 오페라와 발레 작품이 담겨 있다. 또한 삶의 배경이 된 파리의 모습과 함께 자신과 아들, 그리고 오랜 친구인 앙드레 말로를 고유한 색채의 리듬 속으로 띄워 보냈다.
그렇게 샤갈은 음악가들을 오마주했다. 그의 천장화는 모든 위대한 음악가와 그들의 작품에 바치는 찬사를 담은 꽃다발인 양 무대를 향해 뿌려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 자유를 꿈꾸는 다채로운 음악과 조응하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샤갈의 작품은 이처럼 음악으로 숨을 쉰다. 그러고보니 오페라 가르니에는 좌석이 무대와 멀어져도 괜찮다. 그럴수록 샤갈의 음악과 가까워질 테니!
▶▶필자 김보라는 성북구립미술관 관장이다. ICOM 한국위원회와 (재)내셔널트러스트의 이사이며,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진흥정책 심의위원,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이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경기도미술관에 근무하며 건립 TF 및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국내외 전시기획과 공립미술관 행정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2009년 자치구 최초로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의 학예실장을 거쳐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관장을 맡고 있다. 윤중식·서세옥·송영수 등 지역 원로작가의 소장품을 확보해 문화예술 자산에 대한 연구 기반을 확장했고 예술가의 가옥 보존과 연구를 기반으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개관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박물관 및 미술관 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