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영금의 시선] 전쟁과 문학 그리고 탈북

2024-11-12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으로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잃을 위기에 있고, 러시아는 전쟁을 끝낼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어째서, 누가, 그곳에서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묻기도 전에 두 나라 싸움은 곧 끝날 것 같다. 끝나기 전 뺏기지 않으려, 더 많이 빼앗으려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경계와 경계를 넘어 밀고 당기고 마치 한국전쟁을 기억하게 한다. 두 나라 싸움에 미국 대통령은 무엇이기에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장담하며, 북한 지도자는 무엇이기에 막판 싸움에 앳된 병사를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일까. 죽은 사람은 답이 없고 산 사람은 증오와 복수만 가득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으니, 우주인 시선이라면 티끌같이 작은 지구에서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움에 조소를 보낼 것이다.

전쟁은 악이다. 총포탄이 오가야만 전쟁인가. 아직도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득하다. 어느 무식한 지도자가 게임이나 하듯 전쟁 버튼을 눌러버릴지 알 수 없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받지 않은 국가는 언제든 총과 대포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증오에 증오를 부르는 전장에서 목숨은 지극히 가볍다. 어디든 도피해 영달을 꾀할 수 있는 돈을 챙긴 권력자는 총구 앞으로 국민을 몰아내고 그럴듯하게 전쟁을 합리화한다.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있는가. 또는 자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아니기에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공감이 없을 수도 있겠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잃은 사람, 디아스포라를 위해 신이 존재한다. 어둠에서 빛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이다. 신이 있는 나라에서 신을 죽이는 전쟁을 하다니. 신이 주신 귀한 생명을 전쟁으로 소모하지 말고 쇠붙이로 논과 밭을 갈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했으면.

디아스포라, 이산을 디아스포라라 한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고향을 떠난 이들이 쓴 문학이다. 잃어보았기에 터전의 소중함을 안다. 만날 수 없기에 이별과 그리움의 깊이를 안다. 고통을 받아본 사람이 고통의 원인을 묻는다. 어째서 고향을 떠났는가. 아브라함처럼 신의 계시를 받아 떠난 것도 아니요, 일용할 양식을 예비하지 않은 국가의 무능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생존은 본능이요, 기어이 살아 여기까지 왔으니 살아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무식한 정치가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으로 생긴 트라우마와 치유되지 않은 시간은 갈등과 분열을 만든다. 북한이탈주민은 고향을 떠나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정착한 사람은 3만명이 넘는다. 이들을 디아스포라라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이곳에 조상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적합한 용어를 사용하려는 지식인들 생각은 짧으며 무관심하다. 부르면 부르는대로 정착은 바쁘고 벅차다. 귀순 용사면 어떻고, 탈북자면 어떠하리. 각자의 삶에 무늬를 그리며 살아간다.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긴 북한이탈주민의 모습에 전쟁과 분단, 증오와 갈등, 생존과 타협, 이해, 용서 등 모든 것이 있다. 전쟁은 문학을 만들고, 문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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