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정보기술(IT) 업계의 관심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쏠렸다. 166개국, 4800여개 기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전시회인 'CES 2025'가 열렸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에 비해 명성은 못하지만, 최신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기엔 최적의 기회다.
올해 CES의 주제는 다이브인(Dive-in:몰입)이었다. 인공지능(AI)을 여러 산업에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을 단순 노동에서 해방시켜 창조적인 업무에 몰입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참가 기업들은 이런 취지에 맞게 제조, 유통, 모빌리티, 헬스케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AI를 적용한 신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았다.
특히, 올해 CES에서는 다양한 헬스케어 AI 제품들이 관심을 끌었다. 대만 페이스하트는 셀프 카메라로 심장 질환을 진단하는 '카디오 미러'를 선보였고, 폴란드 스테토미는 아이의 가슴에 갖다 대기만 하면 호흡기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기기로 주목을 끌었다. 캐나다 마이앤트는 건강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의류를 선보이기도 했다. AI 기술이 헬스케어 산업의 전 영역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지금이 바로 헬스케어 AI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시기라고 조언한다. 한국의 인구구조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헬스케어 AI 기술의 활용범위가 부쩍 넓어졌기 때문이다. 2024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이는 일본의 고령층 인구 비율보다 높은 수치다. 더불어 진단용 의료기기에 집중적으로 활용되던 AI 기술이 스크리닝·진단, 치료·처방의 헬스케어 영역과 예방·증진, 사후관리를 포함한 웰니스 분야에 두루 적용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프레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의료 AI 시장은 2024년 267억달러(약 39조원)에서 2034년 6318억달러(약 922조원)로 향후 10년 동안 무려 23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헬스케어 AI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AI 기업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와 존 점퍼(John Jumper)가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됨으로써 AI가 학문과 산업에 걸쳐 두루 성과를 내고 있음을 증명하게 됐다. 이들이 개발한 알파폴드(AlphaFold)는 AI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단백질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밝혀 내고, 신약 개발 프로세스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뤄냈다.
인간이 가진 약 2만2000개의 단백질 중 약 3000~4000개의 단백질이 돌연별이, 결핍, 과발현 등으로 질병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어 FDA 승인을 받은 단백질은 약 600개에 불과하다. 2400개 이상의 단백질에 대해서는 아직 치료제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파폴드는 타깃 단백질 발굴, 신약 후보 물질 도출, 전임상 등 신약 개발과정에서 소요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비소세포폐암(NSCLC)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타깃 발굴, 타깃 유전자의 단백질 구조 예측, 후보 물질 분자 구조 최적화를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을 3년 이상 단축했다. 미국 제약사 인실시코(Insilico) 역시 특발성 폐섬유화증 치료제 'INS018-055'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단 46일만에 찾아낸 바 있다.
헬스케어 AI는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여 의료 비용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후생을 개선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의료기기 기업 이외에도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헬스케어 AI 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이유다.
국내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헬스케어 AI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지만, 막대한 투자비용과 더불어 특화 AI 인력의 부족으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우리나라는 헬스케어와 웰니스 산업 특화 AI 인력으로 전환, 성장할 우수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국가 차원에서 미래 성장 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성과를 창출해 낸 경험과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앞으로 헬스케어 AI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AI는 공대의 몫, 헬스케어 산업은 의대의 몫이라는 개념부터 타파해야 한다. 또한 학제 간 통섭을 통해 융합적 사고를 갖춘 헬스케어 산업 특화 AI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의대 증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의사, 헬스케어와 웰니스 산업에 특화된 AI 인력을 양성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또 임상의가 아닌 의사과학자의 비중을 높이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헬스케어 AI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적기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