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프로배구 ‘기록의 여왕’ 황연주가 2010년부터 입어온 현대건설 유니폼을 벗는다. ‘V리그 여자부 최초의 신인왕’의 새로운 행선지는 한국도로공사다.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황연주는 차기 시즌 선수단 구성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는 현대건설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황연주는 2023~2024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었고, 당시 2년 계약(연봉 8000만원, 옵션 3200만원)을 맺은 바 있다. 2년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2025~2026시즌을 앞두고는 새롭게 연봉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현대건설의 차기 시즌 구상에는 황연주는 없었다.
은퇴냐, 현역 연장이냐의 갈림길에 선 황연주. 그가 무엇보다 서운했던 것은, 현대건설 측에서 황연주의 의사를 묻는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황연주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팀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제게 ‘운동을 더 하고 싶냐, 다른 팀을 알아봐주겠다’ 등 이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프로 데뷔는 흥국생명에서 했지만, 첫 FA 자격을 얻은 2010년 현대건설에 이적한 이후 15년 간 뛰었으니 현대건설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무방한 황연주로선 충분히 섭섭함을 느낄 수 있는 처사였다. 현대건설도 차후 코치직 등을 제의했지만, 황연주는 현역 연장에 대한 의사가 강했다. 황연주는 “‘이렇게 된 거 은퇴할까?’ 이런 고민을 하긴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은퇴는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어디든 1년이나 2년 더 뛰어서 건재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현역 연장을 위해선 직접 팀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 고민이 컸던 황연주는 주변에 조언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이효희 한국도로공사 코치가 황연주의 현 상황을 팀에 알리게 되면서 영입 제안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샐러리캡 문제로 리베로 임명옥을 IBK기업은행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보내야만 했던 한국도로공사는 문정원을 리베로로 전향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백업 공격수 자원이 부족해진 한국도로공사에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여전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는 황연주는 안성맞춤인 카드다. 게다가 아시아쿼터 타나차 쑥솟(태국)이 12월에 열리는 동남아시안게임(SEA게임)에 참가해야 해 백업 공격수가 더욱 절실하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번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지난 두 시즌간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모마 바소코(카메룬)를 지명했다. 현대건설의 오른쪽을 책임졌던 모마와 황연주가 모두 한국도로공사로 옮기게 된 셈이다.


황연주의 한국도로공사행은 이적이 아닌 방출 후 계약이 될 전망이다. 황연주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손을 내밀어줘서 정말 감사하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제 역할이나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 현재 몸 상태는 이상이 없다. KOVO컵부터 바로 뛸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종민 감독님께서 운동을 많이 시키는 스타일이라고는 들었지만, 베테랑 선수들은 잘 컨트롤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한 번 해보려고요”라고 덧붙였다.

황연주는 V리그 원년이었던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흥국생명의 지명을 받아 중고교 1년 후배인 ‘배구여제’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의 챔프전 3회 우승을 이끈 뒤 첫 FA 자격을 얻은 2010년 현대건설로 FA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이었던 2010~2011시즌엔 현대건설의 통합우승을 이끌며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 올스타전 MVP까지 ‘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2015~2016시즌, 2023~2024시즌의 챔프전 우승까지 현대건설에서 달성하며 챔프전 우승 반지만 6개를 보유하고 있다. 드래프트 동기인 임명옥(IBK기업은행)과 현재 V리그 여자부 최고령 선수다.
황연주는 여자 프로배구 1호 트리플크라운을 비롯해 여자 프로배구 최초 3000, 4000, 5000득점 기록을 세우면서 ‘기록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9~2020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아포짓으로 쓰는 바람에 현재 득점 부문은 양효진(현대건설, 7946점), 박정아(페퍼저축은행, 6221점)에 이어 통산 3위(5847점)로 내려앉았지만, 서브 득점은 461개로 황민경(IBK기업은행, 395개)에 넉넉하게 앞선 통산 1위에 올라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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