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없는 날=택배 빼앗긴 날?’…택배기사들은 왜 반으로 갈라졌나 [송이라의 트렌드쏙쏙]

2025-08-10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요즘 뜨는 먹거리와 패션, 뷰티템부터 핫한 브랜드 스토리, 숨겨진 유통가 뒷얘기까지 ‘송이라의 트렌드쏙쏙’에서 만나보세요!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노동강도가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택배 기사와 물류센터 종사자가 대표적인데요. 숨쉬는 것조차 힘든 야외에서 택배박스를 오르내리고 운반하는 일은 극한의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배송기사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고자 8월 14일 연휴를 전후해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해 고객들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중소상공인 단체와 일부 배송 기사들은 “생계와 권리를 위협하는 강제 휴무”라고 반박하고 나섰는데요. 같은 택배 업계 사이에서도 이렇게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만약 독자 여러분이 택배회사 대표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늘 트렌드쏙쏙에서는 택배 없는 날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알아보겠습니다.

택배 없는 날은 어떻게 생겼나

택배 업계는 광복절 연휴인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해 택배 기사들의 휴무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업계 자율규약으로 강제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 등 4대 택배사가 참여합니다. 쿠팡과 컬리 등 이미 주5일제 시행 중인 곳들은 동참하진 않지만, 늘 참여 압박을 받고 있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CJ대한통운과 한진은 목요일인 8월 14일을 휴무일로 확정해 14~15일을 쉽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로젠택배는 토요일인 16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15일부터 일요일인 17일까지 총3일간 휴무가 이어집니다. 소비자인 우리는 택배사에 따라 배송 기간이 2~3일씩 늘어나겠지요. 폭염 속 택배 기사들의 안전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해서라는데 며칠 쯤 택배를 늦게 받는게 대수인가 싶기도 합니다.

택배 없는 날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합의가 아닙니다. 택배 기사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직)로 근무 및 처우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로 현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가운데 택배 없는 날은 2020년 고용노동부와 한국통합물류협회, 주요 택배사가 모여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하며 매년 8월 14일을 휴무일로 정한 업계의 공동 약속입니다. 택배 기사들의 혹서기 건강 보호와 추석 성수기 전 재충전, 가족과 함께하는 여름휴가라는 세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택배 기사들이 이룬 작은 쾌거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개인별 자유 휴가와 달리 업계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택배 기사에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이뤄진 일”이라며 “택배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긍정적 입장을 전한 바 있습니다.

택배 없는 날=택배 빼앗긴 날?

하지만, 택배 없는 날이 만들어진 5년이 지난 지금, 택배 기사들은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여기에 중소상공인 단체까지 가세했습니다. 업계가 택배 없는 날을 강제하면서 일할 권리를 빼앗겼다는 게 주된 주장입니다.

사단법인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모든 택배사가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게 되면 중소상공인의 영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며 “온라인 플랫폼 입점 사업자가 판매하는 상품이 ‘혈액’이라면, 택배산업은 이 상품을 전국 각지로 흘려보내는 ‘혈류’와 같다. 혈류가 멈추면 매출도 멈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하루 이틀만 늦어져도 품질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는 신선식품에 타격이 크다는 설명입니다. 이 단체는 농수산물·식품·뷰티 등 각종 상품을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중소형 제조사와 판매자들로 구성됐으며 대부분이 대형 택배사의 물류망에 의존해 사업을 영위합니다. 협회는 택배 기사들의 건강권 보호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판매자의 최소한의 판로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택배 기사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같은 날 오전 서울 강남구 쿠팡 CLS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 없는 날 참여는 개인사업자인 ‘퀵플렉서’(쿠팡 위탁 배송기사)의 생계에 직접적 타격”이라며 “우리는 부담 없이 휴가를 쓰고 언제 쉬든 일정한 수입이 유지되는 쿠팡의 시스템을 믿고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쿠팡은 올해 대선일(6월 3일) 당시 사상 처음으로 로켓배송을 중단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대선일 강제 휴무는 하루 수입을 통째로 날린 ‘택배 빼앗긴 날’이었다”고 꼬집었습니다. CPA는 기자회견 직후 쿠팡 CLS 측에 택배 없는 날 불참을 요구하는 공식 문서를 전달했으며 쿠팡은 14~15일 정상 배송을 이어갈 방침입니다.

우체국 집배원들도 불만인 건 매한가지입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지난달 31일 성명서를 내고 “소포위탁배달원이 쉬는 동안 발생하는 물량을 전량 집배원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택배 의존도 커진 한국...근로형태도 수입도 천차만별

택배 없는 날을 둘러싸고 각계각층에서 상반된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먼저 지난 5년간 온라인 플랫폼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택배 의존도가 높아진 점이 꼽힙니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의 주장처럼 택배 서비스라는 ‘혈류’가 필요한 곳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이들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요.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택배 없는 날이 생기기 직전인 2019년만 해도 국내 온라인 쇼핑 비중은 20%가 채 안됐지만 올해 상반기엔 53.6%로 오프라인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판매자도, 소비자도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온라인 소매 비중이 꾸준히 상승세라고 해도 글로벌 평균은 여전히 20%대이며 미국은 16%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택배 시장이 커지면서 택배 기사들의 근로형태와 처우가 다양화된 점은 또다른 원인입니다. 대다수의 택배 기사들은 개발 택배사 또는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본인 명의의 사업자로 일하는 사업자 형태지만, 일부 택배사나 기업 물류팀에서는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직고용하는 형태도 운영합니다. 쿠팡CLS나 SSG닷컴 등 일부 물류 인력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아울러 본인이 직접 차량을 소유해 해당 차량을 특정 대리점이나 택배사에 등록해 운영하는 지입제 방식도 있습니다. 이는 위탁계약과 차량 소유권이 기사 본인에게 있고 영업권을 매매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입차주 기사가 월 1000만 원의 급여명세서를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처럼 다양한 고용형태에 따라 노동법, 4대보험 유무가 다르고 택배 기사 개개인이 느끼는 근무조건의 안정성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14일을 휴무로 지정할 경우 누군가에는 적은 수입을 포기하는 대신 큰 휴식을 얻는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다른 누군가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모든 사람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단 하루의 택배 없는 날은 과연 택배 기사들의 삶의 질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까요. 아니면 일할 자유를 빼앗는 강압적 조치일까요. 모두가 함께 생각해볼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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