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장’의 포근한 영화…다시 사람에게 희망을 걸고 싶어졌다

2024-09-22

빗속에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누운 후지사와 미사(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월경전증후군(PMS)을 앓고 있다. 평소 온순한 성격이지만 PMS 증상이 발현되면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후지사와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아동용 과학 키트를 제작하는 중소기업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이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에 어울리기 싫어하는 야마조에 타카토시(마츠무라 호쿠토)를 만난다. 어느날 갑자기 야마조에가 숨을 쉬지 못하고 쓰러지자 후지사와는 그가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영화의 ‘뉴 제너레이션’(새로운 세대)이라고 불리는 감독 미야케 쇼(40)의 신작 <새벽의 모든>은 타인이 잘 모르는 병을 가진 남녀의 특별한 관계를 그렸다. 미야케 감독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의학이 신체적 고통은 어느 정도 해결하지만 사회적 고통은 어쩌지 못한다”며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도와주는 사회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PMS나 공황장애 환자들을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면 신체적 고통만으로 끝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이중고를 겪는 것입니다. 꼭 병이 아니더라도 성별이나 국적 같은 다른 다양한 이유로 일하고 싶지만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벽의 모든>에선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회사 동료들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캄캄한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 차가운 현실을 생각하면 다소 판타지처럼 보인다. 미야케 감독은 “그런 회사가 가능하다고도 생각하고, 현실은 차갑다는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그런 좋은 장소는 구성원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쿠리타 과학’ 같은 회사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은 어리석고 게을러서 ‘좋은 것을 만들어나가자’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회사를 만들 수가 없겠죠.”

사실 ‘쿠리타 과학’이란 회사는 원작 소설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미야케 감독이 각색하며 만들어낸 배경이다. 이 회사에선 어두운 방안에서 별을 보여주는 완구 ‘플라네타리움’(천체 투영기)을 만든다. 플라네타리움은 절망적으로 어두운 세상에서도 사람이 서로를 비춰주는 길잡이별이 될 수 있다는 포근한 위로를 전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수없이 사람에게 실망하지만 다시 사람에게 희망을 걸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미야케 감독은 “초등학생일 때 플라네타리움을 보고 마음이 씻겨지고 정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별을 보는 걸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해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아폴로 13>(1995)이라는 영화를 보고선 우주비행사의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중학생 때 수학에 좌절해서 문과로 전향했습니다. 하하하.”

청춘남녀인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연애감정에 빠지지 않는다.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의 자취방에서 빈둥거리며 감자칩을 우걱우걱 먹는다. 미야케는 “많은 영화나 소설에선 고민거리를 가진 남녀가 연애하면서 행복해지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을 읽으며 두 사람이 연애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 끌렸어요. 현실 세계를 보면 연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즐겁게 일하면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배우들과 상의하며 둘이 커플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미야케 감독은 전작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처럼 <새벽의 모든>도 16㎜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35㎜ 필름보다 낮은 화질과 거친 질감을 가졌다. 화면이 거품처럼 자글거리는 필름 특유의 느낌이 영화의 따뜻한 온도와 잘 어울린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으면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집니다. 젊은 스태프들도 좋은 긴장감을 갖고, 배우들도 ‘어, 필름이야?’ 하면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되거든요. 앞으로는 주제나 소재에 따라 디지털로 찍기도, 필름으로 찍기도 할 생각입니다.”

일본 힙합 뮤지션 하이스펙(Hi’Spec)의 간결하고 호젓한 음악도 인상적이다. 미야케 감독은 (2014) <밀사와 파수꾼>(2017)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 <와일드 투어>(2019) 등에서 하이스펙에게 음악을 맡겼다. 미야케 감독은 “제가 하이스펙의 열렬한 팬”이라며 “그분을 좋아해서 함께 일하는 것이고 제 영화와 잘 맞는지는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하이스펙에게는 <새벽의 모든>의 스토리만 간단히 설명해드렸어요. 그런데 대본도, 영상도 보지 않은 단계에서 데모 샘플을 보내주셨죠. 듣고서 ‘이 사람, 정말 천재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미야케 감독은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고지 등과 함께 일본 영화의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거장’으로 꼽힌다. 미야케 감독은 “나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40대이기에, 50대이기에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게 제 세대의식이라고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제 영화의 등장인물이 저와 비슷한 존재였습니다. 여성, 청각장애인, PMS, 공황장애처럼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접근하지 못했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부터 다른 존재를 그릴 수 있었고, <새벽의 모든>도 이 나이가 됐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야케 감독은 ‘젊은 거장’이란 수식어에 대해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고 부담스럽지도 않다”며 웃었다. “하마구치 감독님하고는 친하게 지내긴 합니다만 ‘같은 세대로서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은 없어요. 우리가 찍는 영화는 다릅니다. 등장하는 배우도, 접근법과 방법론도 다르죠.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화가 풍부하고 다양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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