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인공지능(AI)에 진심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100조원을 투자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당선 후에도 인사를 통해 과학기술 정책의 중심에 AI를 두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에 민간기업 출신의 AI 전문가들을 잇달아 임명한 것이다. AI가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라는 인식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도 크다.
수석·장관 모두 AI 전문가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조치 속에서 기초과학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있다. 특히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과학기술 정책 전반을 조율하던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자리를 폐지하고 대신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직을 신설한 것은 단순한 인사 차원이 아니라 상징적인 변화이자 정책 전환의 시그널로 보인다. 과학기술이라는 복합적 체계 안에서 AI 한 분야에만 올인하는 것은 전체 균형을 해칠 수 있다. AI는 과학기술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AI가 과학기술 경쟁력에도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인사와 투자가 AI에만 집중된다면 과유불급이 될 수도 있다.
인사·투자 AI 집중 부작용 우려
기초과학은 혁신의 변수 제공
균형 잡힌 과학기술 강국 돼야

기초과학은 AI와 무관한 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AI는 기초과학에서 출발했고, 이제 기초과학의 진보와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다.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의 수학적 기반을 제시한 존 홉필드와 딥러닝의 핵심 개념을 발전시킨 제프리 힌턴에게 수여되었다. 이들의 업적은 통계물리학과 에너지 지형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어 기초 물리학의 성취로 평가되었다. AI의 기초가 된 신경망 이론 역시 신경생리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경망은 인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으며, 그 뿌리는 신경세포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초기 연구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AI가 기초과학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문 기초 위협하는 AI의 거짓말
지난해 노벨 화학상의 근거가 된 알파폴드(AlphaFold)는 AI가 기초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구조생물학자들과 생화학자들이 복잡한 실험 과정을 거쳐서 규명한 단백질 3차원 구조 수만 개를 학습해서 만든 AI 프로그램이다. 이를 활용해 과학자들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구조 분석 실험 없이도 새로운 단백질의 접힘 구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신약 개발 기간이 현저히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기초과학의 난제를 해결해서 산업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이 AI를 기초과학의 도구로 개발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이제 AI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도구가 되었지만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AI를 이용해 논문을 검색하고 가설을 수립하고 실험을 설계하는 등 거의 모든 연구 과정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논문을 실제처럼 인용하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학문의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위험이 될 수 있다.
다행히도 아직은 연구자가 구글 검색 등을 통해서 AI의 거짓 정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생성형 AI가 고도화되어 가짜 논문을 만들어 내고 이를 인용해서 답변한다면 연구자가 이를 구별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AI가 작성한 논문이 전문가 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게재된 사례도 있었다. 가짜 논문을 만들지 않더라도 기존 논문을 왜곡해서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학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왜곡을 구별할 수 없게 되면 학문의 기초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AI가 거짓말을 하는 환각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AI를 인간이 의도한 목표와 윤리에 부합하도록 정렬시키는 것이 한국형 AI를 만드는 것보다 더 필요하고 효율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재촉하는 인공지능
AI 시대에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난제는 기후위기다. AI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고, 그 결과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스탠퍼드 HAI 보고서에 의하면 AI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수십 년 동안 급격히 증가해 2050년까지 10%, 금세기 말까지 30%에 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기후위기가 AI에 의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역설적이지만 AI는 기초과학과 협업하여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AI 경쟁에 열을 올리는 시대다. 남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뒤늦게 같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선두에 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남들이 미처 주목하지 않은 갈림길에서 다음 혁신의 길목을 찾아 나서면 승자가 될 수 있다. AI를 상수로 놓고 다음 혁신의 변수를 선제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은 그 변수의 출발점이다. 단지 ‘AI 3대 강국’이 아니라 균형 잡힌 과학기술 강국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김진수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