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빠진 피해국 호소와 위령비 옆의 화장실

2025-08-11

원자 폭탄 ‘리틀 보이’와 ‘팻 맨’은 80년 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각각 직격했다. 사망자는 21만 명에 달했다.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는 현재 뼈대만 남은 건물이나 각종 추모를 위한 조형물들·자료관 등이 들어선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됐다.

두 도시의 평화기념공원엔 전쟁의 참상과 평화에의 염원이 가득하다. 폭탄 투하 당시의 방대한 사진 자료는 화상을 입은 어린 아기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핵폭탄이 떨어지는 건 이곳이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각지에서 보내온 수천 마리의 종이학 띠가 넘쳐난다. 하지만 대체 왜 원폭이 투하되었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침략의 역사는 생략됐다. 이 두 장소의 시곗바늘은 원폭을 맞은 그 순간부터 돌아간 듯만 했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에디(55)씨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종일 돌아다녔지만, ‘왜’가 빠져 있다고 느꼈다”며 “아우슈비츠와 진주만 등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쟁 관련 지역을 테마로 가족과 여행 중이지만, 이렇게 피해만 앞세운 건 이상하다”고 말했다.

공원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다. 당시 두 지역의 한국인 희생자는 전체의 5분의 1 정도로 추산된다. 히로시마의 한국인 위령비는 1970년에 세워졌을 무렵엔 공원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가 1999년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나가사키엔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1979년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인 뒤 조촐한 추모비를 세웠다. 비석들 앞에는 목이 말라 고통스럽게 죽어간 이들을 위해 페트병에 담긴 물과 소주병 등이 놓여 있었다. 의아하게도 희생자 위령비 바로 옆엔 어김없이 화장실이 있었다. 강제로 끌려와 타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비를 만들었다더니, 바로 옆에 화장실이 설치됐다는 사실에 적잖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있어서 ‘왜’를 중요시하는 듯하다. 왜 일본이 무모한 전쟁에 돌입했는지, 그 경위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을 겪었던 그의 부친은 ‘종전’이 아닌 ‘패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부친의 동료가 남긴 회고록을 통해 이런 부친의 생각을 알게 된 이시바 총리는 이후 ‘반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갖고 정치에 입문했다. 총리 자리가 위태로운 그이기에 ‘전후 80년 담화’까진 어렵겠지만, 총리 개인 메시지라도 남길 수 있을지 일말의 희망을 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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