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연금 설계에도 ‘흑백 논리’는 나쁘다

2025-05-12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둘 다를 포용할 수 있는 복잡성의 수용이 IBM을 살렸다.” IBM을 살린 루 거스너의 전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2003)에 나오는 말이다. 거스너는 ‘선택’이 아니라 ‘구성’이 전략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1911년 설립된 ‘원조 IT 기업’ IBM은 1990년대 초 ‘하드웨어냐 서비스냐’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1993년 구원투수로 영입된 루거스너의 선택은 ‘둘 다 한다’였다. 당시 일반적인 선택인 ‘제품 또는(or) 서비스’와 달리 IBM은 ‘제품 그리고(and) 서비스’를 선택했다. ‘그리고’의 힘은 IBM을 하드웨어 기업에서 세계 최대 IT 컨설팅 기업으로 전환시켰다.

양자택일은 연금 자산운용 등 재무 설계에도 등장한다. ‘연금 보험이냐 연금 펀드냐’, ‘정기예금이냐 투자상품이냐’, ‘펀드냐 상장지수펀드(ETF)냐’, ‘미국 주식이냐 한국 주식이냐’ 같은 식이다.

‘둘 중 하나’는 단순한 사고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장점이나 단점만 있는 선택은 없다. 이를테면 연금 보험은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다. 펀드는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단기적으로 손실이 날 수 있다.

인간은 택일을 선호한다.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고려하면 뇌의 연산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을 단순한 선택지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뇌는 ‘맞다/틀리다’ ‘좋다/나쁘다’ 같은 이분법 구조에 익숙하다. 게다가 모호함을 싫어한다. A와 B 중에서 하나를 택하고 ‘결정했다는 착각’에 빠진다. 반대로 ‘둘 다 고려한다’는 결론을 유보한 것처럼 느껴져 불안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의 교육과 인생이 ‘여러 가능성 고려하기’ 보다는 ‘한 가지 정답 찾기’에 기울어졌다. 그래서 한 가지를 정하고 밀어붙이면, ‘카리스마 있다’, ‘결정력이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전략’은 첫인상이 복잡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더 풍부하고 지속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노후를 대비하는 연금 자산운용은 단일 목표가 아닌 다중 목표의 최적화 문제다. 즉 수익성과 안정성, 단기 성과와 장기 지속성 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만 고르면 다른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극단의 리스크를 줄이고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 ‘AND 전략’이 필요하다. ‘OR 전략’은 환경이 바뀌면 쉽게 무너진다. 반면 AND 전략은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력을 내포하고 있다.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했다가는 저금리로 인해 충분한 연금자산을 마련하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투자상품으로만 운용했다가 시장 폭락으로 인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AND 전략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구조적으로 흡수한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경영학(연금금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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