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그린 듯한 나체 여성과 함께 은밀한 내용
트럼프 “가짜 뉴스” 강력 반발, WSJ 고소 예고
마가 진영 반발 더 커질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프리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성의 나체가 그려진 외설적인 편지를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 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이 한층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 뉴스”라며 고소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WSJ는 엡스타인의 연인이자 그의 미성년자 성 착취를 도운 기슬레인 맥스웰이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 축하 앨범을 만들기 위해 그와 친분이 있는 수십 명의 지인들에게 생일 축하 편지를 요청했는데, 그 중 한 명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편지는 앨범의 다른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외설적이라고 WSJ는 전했다. WSJ에 따르면 편지에는 두꺼운 마커로 직접 그린 듯한 나체 여성의 윤곽과 함께 여성의 가슴을 연상케 하는 둔덕이 그려져 있다. 허리 아래 지점에는 음모를 표현한 듯한 구불구불한 선으로 쓴 ‘도널드’ 서명이 적혀 있다.
또 나체 여성의 윤곽 안에는 트럼프와 엡스타인의 가상 대화처럼 보이는 3인칭 시점의 타이핑된 메시지도 있었다.
내레이션: 인생에는 모든 것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야 해.
도널드: 맞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어.
제프리: 나도 말하지 않겠어. 그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
도널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어, 제프리.
제프리: 맞아, 생각해보니 그래.
도널드: 수수께끼는 영원히 나이가 들지 않아. 그거 알아?
제프리: 사실, 지난번 너를 봤을 때 그게 분명했어.
도널드: 친구란 정말 멋진 거야. 생일 축하해. 하루하루가 멋진 비밀로 가득하길 바라.
WSJ는 편지를 보낸 사람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 외에도 빅토리아시크릿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억만장자 레슬리 웩스너와 변호사 앨런 더쇼비츠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WSJ에 “이건 내가 아니다. WSJ의 가짜 기사”라면서 “나는 평생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고, 여성의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그건 내 언어가 아니고, 내 말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내보내면 WSJ를 고소하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체포된 뒤 2019년 교도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억만장자 금융인이다. 엡스타인의 사망 이후 그에게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포함된 고객 리스트가 있다거나 사인이 타살이라는 등의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자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NBC 방송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1992년 테이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마러라고 별장 파티에서 한 여성을 끌어당겨 엉덩이를 두드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 비행기록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2002년 뉴욕매거진 기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프리는 함께 있으면 정말 즐거운 사람이다. 저만큼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중 상당수가 어린 편”이라고 발언한 내용도 있다. 다만 둘의 관계는 엡스타인이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체포되기 전 이미 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엡스타인의 친분이 WSJ의 기사로 다시 한번 조명되면서, 이미 미국 정계를 뒤흔들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과 다투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은 엑스에 “연방수사국이 엡스타인 사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그 명단 안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가 나중에 글을 삭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딥스테이트(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가 민주당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엡스타인 파일을 숨기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바로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해 마가 진영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7일 법무부가 엡스타인 ‘고객 명단’이 존재하지 않고 타살 증거도 없다고 밝힌 후 마가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마가 지지자들은 소셜미디어(SNS)에 붉은 마가 모자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동영상을 잇달아 게시하고 있으며 로라 루머, 터커 칼슨, 스티브 배넌 등 마가 인플루언서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파일을 음모론 취급한다며 불만을 표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사건 정보 공개를 촉구하고 나선 의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사건 파일 공개 요구는 “사기극” “민주당을 돕는 일”이라면서, 오히려 지지자들을 맹비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