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건들과 시간을 지나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작품에 많은 준비도 했었고, 어느 때보다 상기된 상태로 연재에 임하게 됐다.
연재가 시작되고 한달이 지날때쯤 우리 작품은 연재중인 카테고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게 됐다. 대략 1달정도 유지하다가 순위가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10위권 안에서 계속 유지를 하며 연재를 했다. 10위권 안이라고 하면 뭐 대단한가 생각이 든다면 지금 네이버웹툰에 들어가서 요일마다 작품수가 몇 개가 있는지 세어보기 바란다. 그 안에서 10위권 안으로 유지한다는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1위에서 금방 떨어졌지만, 상위권 유지에 우리는 매우 기뻐하며
연재를 이어가고 있었다.
연재가 1년이 안될때쯤, 연말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됐다. 마음 안에 “내 노력의 결실이
이제 조금씩 맺어지려나봐. 엄마, 새해에도 복 많이 받고 조금만 기다려”란 말을 안고 어머니와 통화하던 중에 어머니가 굉장히 힘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 암인가봐..”
대략 멍해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있을때는 어머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와 있었다. 가족은 나밖에 없고 다리하나를 잃으신 불편한 몸이시기에 내가 온전히 케어를 맡아서 해야했다. 여러번의 검사, 항암, 수술, 등..난 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갔고 입원했을땐 병원에서 몇일을 병간호를 하며 웹툰 연재를 위한 작업을 해야했다. 최선, 정말 열심히 했지만 원고의 퀄리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작품의 순위와 인기는 점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항암으로 같이 입원한 채로 작업을 하고 있을때였다. 같이 일하는 형의 여자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형이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난 어머니 간병중이어서 바로 가볼 수 없었고, 내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대신 가봐달라고. 형은 응급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었고 아직 코로나로 인해 병원출입이 힘들때여서 아내도 나도 한참을 형을 볼 수 없었다. 연재는 당연히 휴재를 해야만 했다. 둘이 분업하던 것을 바로 내가 소화하기도 어려웠고 당장 대신 할 어시스턴트를 구하기도 어려웠으니 말이다.
4개월정도의 장기간 휴재였다. 그 동안 형은 힘든시간을 보내고 회복을 어느정도 한 후에 볼 수 있었다. 뇌출혈로 인한 왼쪽 편마비 상태였다. 재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회복할 확률은 많지 않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기억이나 머리쪽에 문제나 장애가 안생겨서 다행이라는 형, 이 정도면 오른손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며 힘내보겠다며 멋쩍게 웃어보이며 말하는 형을 보는 난 가슴이 미어질 거 같았다.
힘들었지만, 형의 그런 의지를 살려주고 싶었다. 오히려 예전의 형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불필요한 동정으로 형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던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연재를 다시 시작할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휴재로 떠난 독자들, 내려간 순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상위권까지는 다시 올려놨지만 그 이상은 힘들어 보였다.
개인작가인 우리가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분량과 퀄리티는 대형 스튜디오의 퀄리티 높고 많은 분량의 작품들과 싸우기에 약했다. 그래, 어느정도 변명이다. 조금 낮은 퀄리티와 분량이더라도 그 안이 튼실한 알맹이라면 독자들은 아쉬움을 말하지언정 기대하며 떠나진 않는다.
그냥..좀 억울하고 분통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를 열심히 달려서 잘 이뤄보고 싶은 둘이었는데, 예상치 못하는 일들로 부딪히는 이 현실 때문에 작품에 온 힘을 다 못 실은게 참 억울할 뿐이다.
홍인근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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