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아이가 많았던 시절에는 오월이 되어서야 이 노래를 새삼 상기시켰는데 지금은 아이가 귀한 세상이라 일 년 내내 이 노래를 가슴으로 불러야 하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날을 선포하였고,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어린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에는 아이를 ‘애놈’ 등으로 얕잡아 불렀다. 그 옛날, 인격체로 보기 힘들었을 아이들에게 동학은 왜 그토록 정성을 쏟았을까? 혹시 미래를 예감했던 게 아닐까?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은 높고 낮음이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대단한 프랑스대혁명을 능가한다는 동학사상에 대해 깊이를 더하고자 길을 나섰다. 4월 28일부터 사흘간 떠난 동학 기행은 강원도 원주, 영월, 정선, 홍천, 횡성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전교조 퇴직 교사 40명이 동참했고 가이드는 동학 최고 전문가 원광대 전 총장이신 박맹수 교수님이 맡았다. 동학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더니 나의 지식이 너무나 얕아서 기행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동학의 교리는 교조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에서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그리고 3대 교주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흘러왔다. 본질은 모두가 사람을 중심으로 본 것으로, 당시 신분사회를 기본으로 한 조선 말기에 평등 세상을 주창한 것은 대단한 변혁사상이었다.
이번 동학 기행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경상도에서 발생한 동학은 삽시간에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로 불같이 퍼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신분 차별로부터의 해방,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유무상자(有無相資)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새로운 사상이었을 것이다. 최시형 선생은 1871년 600명의 동학교도들이 영해관아를 습격하여 영해부사를 처형하고 관전을 나눠준, 조선왕조에 저항하는 혁명을 주도하였다. 이에 심각한 탄압을 피해 영양 일월산 대티골에서 은거하다가 강원도 정선, 영월 일대로 거처를 옮겨가며 더 큰 싸움을 준비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봉화 용구골도 그 깊은 일월산의 한 자락이니, 그 옛날 최시형 선생이 이 깊은 오지의 밤길을 걷고 또 걸어 이 길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타오르는 깨달음의 철학을 안고 이 길을 지났을 것이고 지금 내가 그의 족적 위에 앉아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베를 짜는 며느리를 한울님으로 섬겨라’라는 일화는 조선시대 유교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통쾌하게 깨부순 최시형의 일화이다. 이는 오늘날 여성운동의 원류라 할 수 있다. ‘어린이를 때리지 마라’의 물타아(物打兒)는 아동학대방지법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또 이천식천(以天食天) ‘모든 존재가 하늘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 것이다’는 생명운동의 원조이다. 특히 원주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에서 본 장일순 선생은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 할 수 있으며 그를 시작으로 생명운동과 한살림운동, 협동조합, 우리밀살리기운동 등이 시작되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도 동학의 ‘사람이 하늘이다’와 맥락을 같이 한다.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듣는 박경리 작가의 사위인 김지하 시인의 일화는 또 다른 심금을 울렸다. 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지던 1991년 분신 정국에서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워라’라는 칼럼으로 오해를 받아 해명에 나섰던 일화가 있었지만 그의 글 바탕은 ‘한 생명은 정권보다 크다’는 생명 원리에 입각한 운동을 제시한 것으로 이 또한 동학의 생명 중시 사상과 일치한다.
북의 주체사상과 동학과의 관계도 논의되었다. 북의 주체사상의 근간인 이민위천(以民爲天)과 민중 중심의 사상은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동학은, 19세기 말 전 세계에서 가장 시대를 앞선 혁명이었으며 지금의 여성운동, 어린이운동, 생명운동, 공동체운동, 한살림운동, 협동조합운동, 채식운동, 위생운동, 환경운동의 뿌리이다. 독립선언에 동참한 33인 중 15명이 동학교도인 것만 봐도 동학혁명을 통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동학은 남북 통일운동의 근거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만물의 근원이다.
서민태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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