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다리와 오른손 일부가 없는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국가대표 수영선수, 아시아 최초 ‘접근성 스페셜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던 ‘로봇다리’ 김세진(28)씨는 최근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려고 하고 있다. 패션의 일부로 장애를 드러내는 ‘어댑티브 패션’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다. 김씨는 자신의 삶이 이리저리 많이 흔들렸다고 표현했지만, 방향성은 줄곧 하나였다. ‘자신이 받은 기회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는 것.’
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만난 김씨는 키 182㎝의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의자에 앉아 바짓단을 걷어 올리자, 양다리에 티타늄 소재의 의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방송 등을 통해 ‘로봇다리’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였다. 김씨는 이 다리로 전 세계를 다니며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패럴림픽이 아닌 올림픽 마라톤 수영에 출전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약 150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수영선수에서 은퇴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법무법인을 거쳐 게임회사인 스마일게이트에서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로 일했다. 김씨는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콘텐트를 편리하게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분들을 위해서 모두가 장벽 없이 콘텐트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며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컨설팅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장애인 게이머를 위한 접근성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김씨는 사고로 오른 다리를 잃은 인도네시아 소년 넬디에게 2009년부터 자신의 의족을 계속해서 물려주며 형제의 연을 맺고 있다. 후원기관 컴패션을 통해 우연히 연결된 넬디의 부상 부위와 김씨의 의족은 신기하게도 딱 맞았다. 성장기를 보내며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를 두고 김씨는 “넬디는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자신이 무엇을 이뤘는지 대한 내용을 보냈다”며 “고마움을 성장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기뻤다”고 전했다.
김씨가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나누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어머니와 누나 덕이라고 한다. 어머니 양정숙씨는 자원봉사를 하던 보육원에서 아기였던 김씨를 만나 그를 입양했다. 누나는 김씨를 친동생처럼 아끼며 학교폭력을 당하던 김씨를 위해 자신의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과 같이 등하교했다. 김씨는 “정말로 내가 스스로 걸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 내가 어머니에게 배운 사랑”이라며 “나도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자신의 성장, 타인과의 나눔을 병행해 왔다면, 이제 김씨는 본격적으로 나눔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의족을 벗거나 신은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어댑티브 패션모델 활동도 같은 맥락이다. 김씨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꿈에 도전하는 모습을 내가 보여준다면 이 또한 누군가에게 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해본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최종 목표는 그가 나눠 받은 사랑을 후배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룹홈’을 세우는 일이다. 김씨는 “나와 같은 고향(보육원)을 가진 동생들을 보면 24살에 사회로 나오며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받는데, 이걸로는 갈 곳이 없어 안 좋은 길로 흘러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단순히 얼마를 주고 사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온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내가 받았던 사랑과 기회처럼 끝까지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