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자서전으로부터 품은 15년의 꿈”…김대중 전 대통령 삶 다룬 뮤지컬 ‘나의 대통령’

2025-09-15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눈물 흘리던 사진이 굉장히 강렬했어요. 연출하는 사람들은 인물의 표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분은 휴머니스트구나, 진실하다는 느낌을 받았죠. 석 달 만에 김대중 대통령도 돌아가시고 이듬해 <김대중 자서전>이 나오자마자 읽었는데 사진과 자서전 사이의 괴리가 없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깊은 인물이구나, 이 시대의 위인이라고 생각했죠.”

지난달 29일 부천시민회관에서 막을 올린 <나의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의 삶을 뮤지컬로 만드는 이례적 시도로 관심을 모았다. 권호성 연출가(62)는 “예술가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작업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삶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며 “15년 전부터 품어왔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김대중’과 ‘뮤지컬’은 쉽게 떠오르는 조합은 아니다. 심지어 무대는 1000석이 넘는 대극장. 연극과 뮤지컬 모두 활발하게 활동해온 권 연출은 왜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로 만들고 싶었을까.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연극으로 다루면 너무 건조하고 무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레미제라블>도 굉장히 두꺼운 소설인데 뮤지컬로 만들어졌잖아요. 뮤지컬은 노래와 춤이 더해지고 큰 무대에서 시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수백 수천명을 넘어 수만명이, 특히 젊은 세대가 이야기를 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구요.”

뮤지컬을 보면 새삼 놀라게 되는 부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무대에 옮긴 것 뿐인데 그 자체로 ‘극적’이라는 점이다.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던 순간으로부터 시작해 유신 정권의 납치 사건,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무대에 펼쳐진다. “장면 하나하나가 상상하기 힘든 무게감이 있는 사건들이라 ‘어떻게 강조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힘을 뺄까’가 고민이었습니다. (납치 사건 당시) 용금호에서 바다에 수장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릴적 고향 하의도에서 부모님과의 기억을 배치해 그의 꿈을 담아내는 식으로 풀어갔죠.”

실존 인물 그것도 정치인의 삶을 무대로 옮긴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독재 정권의 김 대통령에 대한 ‘악마화’로 한국 사회에서 그에 대한 호오가 크게 나뉘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달 28일 시사회에서 관람한 <나의 대통령>은 인물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진 않았다. “연출가로서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단단함 속에 부드러움을 가졌던 소년같은 사람, 고난에도 꿈을 잃지 않고 이루려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등 주요 인물 외에는 가상 인물이다. 독재 정권을 지키는 모태술이라는 인물에선 차지철을, 군부의 편에서 비판자로 변하는 육승업이라는 인물에선 김재규를 떠올릴 법도 하다. “같은 역사의 현장에서 힘있는 편에 선 사람과 정의의 편에 선 사람으로 대비시켜봤습니다. 한국 사회의 대척점으로 볼 수도 있구요. 김대중은 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미완의 과제로 남은 부분들이 많죠.”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흥행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본격 추진된 문화 콘텐츠 육성 정책이 새삼 조명되기도 했다. 우려가 컸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오늘날 ‘한류’의 단초가 됐다. “당시 김 대통령이 100석짜리 대학로 소극장에 공연을 보러 오신 기억이 나요. 연극·무용 등 순수예술 장르에 대한 예산과 애정도 많이 주셨죠. 결국 그러한 무대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실력을 드러내고 오늘날 K-컬처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요.”

이 작품은 당초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에 맞춰 지난해 12월13~15일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의 불법 계엄으로 해당 공연이 취소되면서 이번이 첫 무대가 됐다. “과천 연습실에서 12월3일 밤 10시에 최종 연습을 마치고 짐을 실은 차는 먼저 내려갔어요. 그런데 11시쯤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전화를 받고서 무슨 농담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했는데…작품 속 사건이 현재 벌어지다니 초현실적이었죠. 큰 손해를 보고 계엄의 또다른 피해자가 돼버렸어요.”

권 연출은 <나의 대통령>이 기념 공연이 아닌 ‘상업극’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안중근, 명성황후 등 역사 인물을 다룬 뮤지컬들이 많죠. 한국 현대에도 존경받아 마땅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과 무대세트를 가다듬어야 하고, 무엇보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야 하겠죠. 관객들이 정의롭게 산다는 것, 신념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무대에서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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