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후 1시 4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영화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힘내라 대한민국’ 엔딩 크레디트가 서서히 올라갔다. 이때 6열에 앉은 정미연(60)씨가 “탄핵 무효! 이재명 구속!” 구호를 연호하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정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봐야 하는 영화”라며 “가족, 교회 지인들과 N차 관람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영화 상영 중 윤 대통령이 “언젠가 해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자 극장은 환호와 박수로 덮였다. 한 중년 여성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탄핵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나올 땐 객석 곳곳에서 원색적인 욕설이 터져 나왔다.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충성가(양양가) 박자에 맞춰 태극기 깃발을 흔드는 관객도 보였다.


전체 130석 규모의 극장은 이날 전 좌석 매진이었다. 관객 연령대는 다양했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지만, 20·30대로 보이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힘내라 대한민국’은 국내에 공산주의 세력이 암약하고 있기 때문에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힘내라 대한민국’은 2일 기준 누적 관객수 1만8205명, 스크린 수 103개, 예매율 1%에 그쳤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전모(69)씨는 “대한민국이 공산화 일보 직전이기 때문에 진실을 알기 위해 영화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한모(32)씨는 “내용도 단조롭고 영화라기보다는 선전물 같았다”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극장가에선 정치 소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오는 6일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정치 여정을 담은 영화 ‘준스톤 이어원’이 개봉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린 영화 ‘건국전쟁 2’는 오는 26일 개봉을 예고했다. 지난해 2월 개봉한 ‘건국전쟁’ 1편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약 117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작비가 적게 드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가성비 있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며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한 보수층을 겨냥하는 영화가 잘 먹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 영화 등 예술 매체를 통해서 팬덤을 결집하는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일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연극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관람을 시작으로 공개 정치 행보를 재개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나온씨어터를 찾은 한 전 대표는 “보훈과 안보를 목숨처럼 여기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1월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1987’을 관람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울면서 아주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가 과열되면서 고정 팬덤에 소구하는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일부 보수 지지자들은 주류 언론에서 자신들의 신념 체계를 잘 반영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강한데,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를 소비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개봉한 다큐 영화는 주로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는 효과가 강해 보인다”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영화가 되기 위해선 객관적이고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