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종 논설실장

‘음서제(蔭敍制)’는 고려와 조선시대 때 고위 관리의 자손을 과거(科擧)를 치르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를 말한다. 한마디로 음덕(蔭德), 즉 조상의 덕에 의해 그 자손들이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리가 되는 제도인 것이다.
▲음서제는 고려 성종 때부터 시행된 것으로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음보제도를 들여와 5품 이상 관료의 아들이나 손자, 외손자, 사위 등에게 관직을 주는 제도다.
고려 문벌 귀족들이 관직 세습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것이다.
음서로 받는 관직의 품계는 낮았지만 10대 때부터 경력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추후 과거에 급제할 경우 처음부터 과거로 등용된 관리보다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데 훨씬 유리했다.
고려시대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경대승이나 이인임 같은 인물도 음서로 관직을 받은 후 최고 권력자로 등극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들의 능력도 있었겠지만 가문의 후광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음서제가 유지됐으나 고려시대보다는 엄격하게 적용됐다.
우선 대상자가 3품 이상 고위 관료의 아들·손자·동생·사위 등으로 한정됐고, 음서 자격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관직을 내리지도 않았다.
문음취재(門蔭取材)라는 별도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비록 하위직이라도 최소한의 직무 수행 능력이 있어야 관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음서 출신은 사간원·사헌부·홍문관 등 청요직(청렴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따라서 청요직을 거쳐야 하는 정승이나 판서 같은 고위 관료로 승진할 수도 없었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세조)이 정권을 잡는데 일등 공신인 한명회도 음서 출신으로 개성의 경덕궁 궁지기라는 말단직에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명회도 계유정난 후 사실상 조선의 2인자가 됐지만 과거시험을 따로 쳐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A 완성차 노조의 ‘고용세습’ 추진 논란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극히 일부 사례라고 믿겠지만 최근 노동조합원 자녀에게 우선 채용권을 부여하자고 하다가 말았다는 그런 논란을 제가 보도에서 본 일이 있다”며 “불공정의 대명사 아니냐”고 꼬집은 것이다. 일부 노조의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이번 만이 아니다.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