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9월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에 있는 소규모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 유통에 이용된 혐의가 있는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 은행의 거래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를 관보에 게재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미국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각국 금융기관은 미국과 거래가 막히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이 은행과 거래를 끊었다. 다급해진 북한은 뒤늦게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이 새로운 무기인 ‘제재’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20여년 동안 적대국 혹은 적대국을 돕는 나라나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강도가 더 세졌고 그리고 전세계로 확대됐다. 덩달아 유럽도 이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러시아나 중국도 맞제재를 구사하고 있다. 가히 총성 없는 전쟁이다.
미국이 휘두르는 제재에 대해 분석한 ‘제재 전쟁: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온다’가 출간됐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 유지를 위해 더 이상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제재’를 구사하게 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제재에 대한 의존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저자가 구분하는 제재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1차 제재, 2차 제재, 수출, 금융 제재다. 미국이 제재에 의존하는 이유는 ‘전쟁에 지친’, ‘더 이상 피 흘리지 않으려는’ 상황에서도 패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패권 유지에 집착하면서 새로운 무기를 휘두르는 상황에서다.
트럼프는 앞서 1기 정부때부터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패권을 놓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과 외교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대신 각종 제재를 도입했다. 바이든 정부 때도 제재는 이어지면서 이제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는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1에 이른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아직 우리 정부나 기업들 중에서는 제재에 대한 관심이 적다. 폭탄이 터지거나 주목을 끌지 않아서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미국이 동맹이라고 마음 놓기에는 불안하다. 기업 등 제재를 당하는 쪽은 생존의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 제재의 글로벌 역학 관계를 연구하고 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그나마 주목 받는 것이 반도체 패권 전쟁인데 이는 글로벌 제재 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자동차, 인공지능(AI), 바이오, 가상자, 핀테크, 패션 등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강도는 세질 전망이다. 저자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글로벌 제재 전쟁의 전선은 더 다양해지고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