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공급망 확보와 해군력 강화

최근 국제적으로 해상 항로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선박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우회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흑해를 통한 운송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조업과 무역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 안전한 해상 항로 확보는 필수적이다. 해군력이 우리 상선대를 보호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와 같은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시대에 우리나라 제조업과 무역을 유지하고 에너지 및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됐다.

자동차·전기전자·화학·섬유 등 대부분의 제조업은 원자재와 중간재의 국제적 공급망에 의존하는 분업화가 이뤄져 있다. 전 세계로부터 원자재, 부품과 중간재를 구매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다시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급망에 의존해 제조와 무역을 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규모가 100%를 넘는 세계 1위의 무역 의존국이다. 수출입 화물의 99.7%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고 원유·석탄·가스·곡물 등 에너지 및 전략 화물의 100%를 해상운송에 의존한다. 국민 생활의 풍요로움을 유지하고 제조업과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인 장거리 해상운송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해군은 국적 상선대 호송을 위한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이 구축해놓은 항해의 자유 보장과 선박 보호하에 안전하게 장거리 해상운송을 할 수 있지만 최근 미국 고립주의 추세로 인해 미국 주도의 해상운송 안보 체제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국의 에너지 수송선 등 상선대를 호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러나 중국·러시아·인도·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도 대양을 가로질러 일부 항로와 지역에서 자국 상선대를 호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해상 항로를 확보하고 에너지 수송선박 등 상선대를 보호하기 위해 항공모함·호위함·구축함·지원함 등을 배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에너지원을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무역도 세계 6위 규모로 커졌다. 이에 맞는 대양해군의 역량을 갖추어나가야 한다. 핵심 전력 전투함인 구축함을 현재 12척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 한반도 방위 및 청해부대 파견과 교대에 투입하고 있어 남중국해·인도양 등에 추가 파병하려면 구축함을 더 건조해야 한다. 또한 경항모도 확보해 우리 상선대의 공해상 운송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난해에 미국에서 출판된 ‘ZERO POINT FOUR’라는 책에서 미국의 상선대가 전 세계 선대의 0.4%만 차지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일반대중과 의회가 수출입 상품과 에너지의 90%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런 현상을 “미국이 바다맹증(Sea Blindness)에 고통받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 선주협회 자료에 따르면 일상생활 가까이에 있는 열 가지 물건 중 여덟 개는 해외에서 배로 수송돼 온 것이라 한다. 해상운송에 의한 공급망 확보가 우리나라 제조업과 무역, 그리고 국민 생활에 미치는 명확한 개념이 없다면 해운의 역할과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군이 상선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해군력은 경제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보루다. 국방부·산업통상부·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는 대양 해군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