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이어 11월에도 주차된 벤츠 E클래스 전기차 화재 발생
세 달 반 지났지만 화재 원인 규명 아직 안 돼…이번에도 ‘신중 모드’
조사 발표 이전에도 적극적인 대응으로 소비자의 불안감 해소해야
지난 14일 충남 아산시 모종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에 불이 났다. 지난 8월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불이 나면서 '전기차 포비아'가 불거진 지 105일 만이다. 둘 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E클래스 차량들이다. 8월에는 EQE 350에 불이 났었고, 이번에는 EQC400 4MATIC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8월에는 87대의 차량이 전소되거나 불에 타고 793대가 그을음 등의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8월 사고가 던진 여파는 컸다.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사전에 인증하는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배터리 원산지 공개도 의무화됐다.
벤츠도 나름 대응에 나서긴 했다. 사고에 따른 피해 복구와 주민 생활 정상화를 위해 45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하지만 그 시점은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도 넘게 지난 8월 9일이었다. 벤츠코리아를 대표하는 마티아스 바이틀 사장이 현장에 나타난 것은 사고 후 보름 가까이 지만 8월 14일이었다. 그 전에는 벤츠코리아 임원들만 현장을 오갔다.
화재의 원인은 세 달 반이 되도록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피해자들은 조사 결과가 나와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조사 지연의 책임이 벤츠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망의 화살은 벤츠를 향할 수밖에 없다.
이번 화재에 대해서도 벤츠는 '신중 모드'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단다. 8월 초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중요한 일일수록 서두르지 않고 신중함을 기해야 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신속함이 생명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어도 당국의 조사가 오래 걸릴수록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벤츠다. 무작정 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핑계에 숨어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불안만 키울 뿐이다.
두 번 깨진 신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어붙이기 어려워진다. 특히, 벤츠 입장에서는 한국 소비자들이 등 돌리는 일은 꽤 치명적인 타격이다. 한국 고객의 벤츠 E클래스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E클래스 세단 판매 1위는 한국이었다.
이번 전기차 화재사고 발생을 놓고 "또 벤츠야?"라는 비아냥거림이 들린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대표적인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 각인됐던 벤츠에 벌써부터 부정적 선입견이 덧씌워졌다는 의미다.
부정적 선입견, 특히 안전과 관련된 선입견은 전기차에 난 불처럼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번 화재는 발생한 지 아직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다면 늑장 대응 소리를 면할 수 있다. 사소하고 불명확한 사안이라도 고객을 위해 발 벗고 뛰는 모습을 보여줄 때 "또 벤츠야?" 소리가 "역시 벤츠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