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겨울, 쿠키 브랜드 ‘네슬레 톨하우스’가 ‘비크맨1802’라는 뷰티 브랜드와 협업해 보디제품을 출시했다. ‘향기’가 핵심인 이 제품은 공개되자마자 한 시간 만에 온라인으로 100만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시향도 없이 온라인으로 ‘향기’를 팔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언어 감각’. 사람들을 매료시킨 향기로운 문장은 이러하다. ‘가족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크리스마스 쿠키 냄새의 보디로션’. 그 냄새가 정확히 어떠한지 알 수는 없지만, 제품 이름이 그냥 ‘쿠키 냄새 보디로션’이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되어 마케팅 성공 사례로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후각보다 시각으로 더 먼저 고객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 요즘 일 잘한다는 향기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향기를 번역한다.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쿠키를 만드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커다란 트리에 주렁주렁 열린 빨간색 오너먼트 주위에는 알전구가 반짝이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오븐 장갑을 끼고 그릇에 담아 내온 갓 구운 쿠키 냄새가 퍼진다. 적고 보니 그 쿠키는 평범한 쿠키와 다를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의 쿠키라는 단어 속에는 그날의 정서, 가족의 표정, 들뜬 마음마저 모두 담겨 있다. 향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추억을 현상하는 섬세한 방식. ‘크리스마스의 쿠키 냄새’는 쿠키 냄새보다 달콤하고 사랑의 냄새보다 선명한 이름이다.
기발한 언어 감각을 발휘한 향기 브랜드의 사례는 국내에도 많다.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던 서랍 안에서 스카프와 장신구, 각종 잡동사니 사이로 익숙한 분 냄새가 일었다…’로 시작되는 문장은 문학 작품 속 장면 묘사가 아니다. 이는 ‘그랑핸드’라는 향수 브랜드의 홈페이지에 적힌 상품 설명이다. 읽기만 해도 그 순간, 그 공간, 그 상황에 숨죽여 몰입하게 된다. 이 설명 글에 이끌려 향기도 맡지 않고 제품을 구매했다는 후기도 많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손에 담을 수도 없는 찰나의 향기를 포착하기에 ‘후각의 언어화’가 얼마나 적절한지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향기를 언어로 담아내는 이 은밀한 보존술은 비주얼만으로 감각을 팔아야 하는 이 시대의 마케팅 기법이기도 하지만, 감각이 둔탁해진 우리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팁이기도 하다. 나는 올해 신년 다짐으로 ‘더 자주 좋은 향기를 맡을 것’이라 적었다.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기 위한 나름의 장치였다. 아침 샤워 젤의 냄새를 충분히 즐기고. 출근길의 첫 바깥 공기를 꼭 음미하고, 매일 처음 마시는 커피의 향기는 꼭 맡겠다고 다짐했다. 온전하게 그 시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까. 분주함과 조급함을 진정시키고, 아주 ‘소량의 순수한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기보다 훨씬 쉬운 다짐인데도 지키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나는 새해 다짐을 조금 수정하기로 한다. 마음에 드는 ‘짤’을 찾으면 꼭 저장해두는 것처럼, 내가 맡은 신선한 기쁨과 슬픔의 냄새에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그 순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를 지나치지 않고 그 순간에 머물러 그에 꼭 맞는 이름을 고민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만든 쿠키 냄새처럼, 처음 열어 본 서랍에서 난 냄새처럼, 아름다운 향기의 문장을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 장미와 아이리스가 만발하는 오월의 정중앙에서 나는 어떤 이름의 향기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

▲정유라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