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생과 갑부 장남의 정사 한·중·일 뒤흔들어

2024-12-26

온양온천과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충남 아산의 온양온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역대 왕들이 병 치료를 위해 자주 찾기도 했다. 지금은 전철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리면서 노인들의 원족 다녀오는 곳쯤으로 변해 안타깝다. 그런데 여기가 한·중·일 삼국을 뒤흔든 비극적 사랑의 무대였던 적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의 일이다. 당대 최고의 갑부 장남과 평양 출신 권번 기생 사이의 애련한 사랑이 온양온천에서 동반자살로 마감했으니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강명화와 장병천의 동반 자살

나혜석 추도사, 중·일에도 전파

일본 감독 영화화 한·일 절찬 상영

윤심덕·김우진 자살에 영향 준 듯

기생 멸시 시대 편견에 저항

비련 현장 온양온천 상품화할 만

1923년 6월 11일 온양온천의 한 여관에서 명월관 출신 기생 강명화(康明花)가 23살의 나이에 쥐약을 삼키고서 자살했다. 그녀의 애인 장병천(張炳天)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니까 강명화가 여관방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거려 의사를 부르려는데 그녀가 만류해 일단 품에 안고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파건(장병천의 아호)이 아닙니까? 난 독약을 삼켜 이미 틀렸으니 마지막으로 꼭 껴안아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서 죽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꽃 같은 몸이 생명을 끊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안타깝게 보도했다.

울다 지친 장병천, 넉 달 만에 목숨 끊어

장병천은 장례식장에서 울다 지쳐 실성한 나머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장례를 치른 후에도 그녀와 함께 살던 서울 종로의 창신동 집에 틀어박혀서 외부 출입을 하지 않다가 한 달 후인 7월 11일 온양온천의 같은 장소에서 쥐약을 삼키고 자살을 기도했다. 이것이 실패로 끝나자 석 달 후인 10월 29일 다시 죽음을 택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강명화의 죽음과 달리 장병천이 부랑자에 불과했다고 이를 마땅치 않게 보도했다. 강명화는 그가 정상적으로 살기를 간곡히 바랐는데 이를 외면한 채 동반자살을 택함으로써 앞서 죽은 애인의 뜻과 크게 어긋나서다.

그녀가 자살에 이른 건 장병천을 너무 사랑해서다. 그렇다고 사랑한 나머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장병천은 부모와 의절해야 하고, 또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폐인이 될 게 분명해 그녀로선 이런 꼴을 볼 수 없었다. 죽어가면서도 애인에게 부모님께 효도하고 큰 인물이 되어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사의 찬미’를 불러 유명해진 윤심덕이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져 죽은 것도 그로부터 석 달 후의 일인데 이들의 동반자살이 분명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한편 장병천의 아버지 장길상은 당시 경상도에서 재산이 으뜸이었고, 전국적으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부자였다. 그러니 그의 눈에 강명화가 재산을 탐내 아들을 유혹하는 요부로 보였던 게 아닐까? 반면 강명화는 경성의 한량치고 모르는 사내가 없을 정도로 당대 최고로 잘 나가던 기생이었다. 그녀가 부르는 ‘수심가’와 ‘배따라기’를 듣기 위해 거금도 마다치 않고 내던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절개를 지키겠다고 결심해 누구에게도 몸과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장병천을 만나면서 이 결심이 허물어졌다.

그런데도 장길상은 둘의 사귐을 반대해 기생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이들은 도쿄 유학길에 올라 장병천은 대학 예비과에, 강명화는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장길상은 아들이 비밀리에 유학 간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보내던 생활비마저 끊자 이들은 이내 가난에 시달렸다. 게다가 도피 유학으로 오해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질시로 집단폭행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때 강명화는 새끼손가락을 잘라 보이면서 다른 유학생들과 똑같이 고생하면서 학문의 길을 가려 한다고 당차게 대응했다. 그러나 쪼들린 살림에 이런 질시까지 잠재울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고 경성에 돌아왔다.

강명화는 당장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종로의 전동(현 견지동) 집을 어머니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한 뒤 그 돈으로 생활을 꾸려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장병천 부모의 대구 집을 홀로 찾아가 직접 애원했지만, 기생 출신을 며느리로 삼을 수 없다는 장길상에 의해 당장 문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애인마저 나락에 떨어뜨릴 것 같아 강명화는 자살을 결심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살을 결심한 건데 이 행동은 반세기가 흘러 은막의 스타 커플인 김지미와 최무룡이 헤어질 때 ‘사랑하기에 이혼한다’로 변질되었다.

“당신 떠나 살 수 없는데” 절명사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은 언론에 게재된 ‘강명화의 자살’이란 추모사에서 그녀의 절명사를 서두에 인용했다. 이에 추모사는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나서 살 수 없는데 당신은 나와 살면 가족도 세상도 모두 외면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내 한목숨 끊는 게 옳을 것입니다”라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보면 강명화는 현대판 춘향과도 같지만, 그보다는 시대의 구조적 억압에 앞장서 저항한 여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이들의 동반자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이내 전국의 화제가 되었다. 또 일본과 중국으로도 급속히 전해졌다.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적지 아니 충격을 받았는데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25년 봄 ‘강명화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소설이 출판되었다. 이 소설이 시중에 나오자 장길상은 화가 나 내 아들을 두 번 죽이고 우리 집안을 흠집 내는 처사라며 당국에 소설의 압수를 요청했는데 거부당했다. 이에 장길상은 전국에 사람을 풀어 소설을 보는 족족 구매해 소각했지만 그럴수록 출판사는 계속 찍어대 그는 많은 돈을 날렸다.

일본에선 1924년 영화감독 하야가와(早川)가 현장을 직접 답사했다. 그리고 둘이 살던 창신동의 셋방과 이들이 자살한 온양온천, 또 경성부의 명월관과 평양부 강명화의 고향 마을 등을 방문한 뒤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이 영화가 ‘비련의 곡’이었는데 하야가와 감독은 실재감을 살리기 위해 명월관 기생 문명옥(文明玉)을 직접 캐스팅해 주인공 강명화 역을 맡겼다. 장길상은 영화상영의 중단을 당국에 요청했지만, 이번에는 예술 작품이라는 이유로 거부돼 이 영화는 조선과 일본에서 절찬리에 상영되었다.

해방 후에는 다른 사건들에 의해 묻혀서인지 이 사건은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다 1967년 ‘강명화’란 타이틀로 강대진 감독에 의해 다시 영화화되었다. 주인공 역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배우 신성일과 윤정희가 맡았다. 이 영화는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전국의 전·현직 기생은 물론이고, 대학생 등 남녀 청춘들까지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건 인간의 영원한 로망이다. 이에 셰익스피어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주인공 삼아 소설로 썼다. 이들의 사랑의 현장인 이탈리아 베로나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또 사랑을 나눴던 집에는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전 예약하지 않고선 입장할 수 없다. 그럴 정도로 유명 장소가 되었는데 온양온천도 이런 사랑의 스토리로 잘 꾸며지면 젊은 사람도 즐겨 찾는 소위 ‘핫한’ 장소로 바뀔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랑이 섹스로, 애정이 돈으로, 낭만이 퇴폐로’ 변질된 오늘날에 지고지순한 사랑이 더욱 그리워지지 않는가.

낭만주의자 장택상이 작은아버지

초대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창랑 장택상(張澤相)은 장길상의 친동생이다. 장택상에게도 장조카인 장병천의 DNA가 있었는지 ‘로맨스는 인생이요, 인생은 로맨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럴 정도로 창랑은 정치인으로서 여유가 있고 낭만적이었는데 결혼 상대자로 택한 여성이 경성역 앞을 지나다 한눈에 반한 아이 둘 가진 미망인이라는 점도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처음 결혼한 부인과는 일찍이 사별했지만, 이 여성과는 평생을 해로했다. 그러니 형 장길상보다 훨씬 멋진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이런 여유와 낭만이 우리 정치의 각박함과 양극성을 해소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을까?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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