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은 속칭 ‘개미’라 불리는 개인 주식투자자인 듯싶다. 1400만 명(전 국민의 27%)으로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구심점이 없어 보이지만, ‘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공동 목표가 뚜렷해 결속력이 강하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보다 무섭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여론을 몰아가며 조직적이고 열정적으로 움직인다.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데도 능하다. 상법 개정 때 거대 사모펀드와 손잡고, 주식차익 과세와 관련해선 큰손과 같은 편이다. 1980~90년대 주가가 내려가면 홧김에 증권사 시세판에 의자를 집어던지던 조악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1400만 개인투자자, 최강 이익집단
코스피 5000 내건 정부, 발목 잡혀
세제 개편안은 대부분 정상화 조치
한번 밀리면 정권 내내 끌려다닐 것
‘기울어진 운동장의 약자’라는 이미지가 그들의 무기다. 개미나 소액주주라는 용어 자체가 그런 느낌을 준다. 기초생활자·고령자·영세업자처럼 정부가 늘 신경 쓰고 보호해야 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때로는 ‘동학 개미’ 같은 탁월한(?) 작명으로 애국심을 접목했다. ‘정의로운 약자’로 진화한 셈이다. 주식투자자가 약자라는 프레임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 애국심 운운도 너무 나간 얘기다. 개인투자자는 윤석열 정부에서 공매도 금지, 금융투자소득세 백지화를 끌어냈다. 문재인 정부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두 차례나 공매도 금지를 연장한 것도 개인투자자의 표를 의식해서였다. 명분은 소액주주 보호였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먼 조치였다. 자본시장이 후퇴하면서 투기판이 되면 결국 피해가 소액주주에게 돌아간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대선 득표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개인투자자가 집요하게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증시 포퓰리즘을 썼다가 ‘주가=정권 성적표’라는 고약한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주가는 국정 운영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 국민 살림이 나아지고, 기업이 이익을 내면서 경제가 성장하면 주가도 오른다. 경제가 엉망인데 주가만 오를 수 없다. 설령 무리수를 둬가며 주가를 끌어올려도 이내 꺼지게 마련이다. 과거에 수없이 겪어온 터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주식투자 세금을 강화하자 개인투자자가 반발했다. ‘이래서 코스피 5000 가겠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논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기로 하자 국회 반대청원이 14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주식차익 과세 대상을 넓혀나가는 건 조세의 큰 방향이자 원칙이다. 선진국도 그렇게 한다. 세수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 형평성의 문제다. 최저임금 알바도 근로소득세를 내고, 소액 예금에도 이자소득세가 붙는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역대 정부는 과세 대상을 늘려 왔다. 대주주 기준을 2000년 100억원에서 2013년 50억원→2016년 25억원→2018년 15억원→2020년 10억원으로 내렸다. 그러던 것을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50억원으로 대폭 올렸다. 십수 년 공들여 낮춰 온 조치를 하루아침에 뒤집었다. 이번에 10억원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예전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종의 정상화 조치다.
둘째, 정부가 증권거래세(농어촌특별세 포함)를 0.15%에서 0.2%로 올리기로 하자 증세라는 불만이 많다. 증권거래세는 2019년만 해도 지금의 두 배인 0.3%였다. 그 뒤 금투세 시행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낮췄다. 그런데 금투세가 백지화됐다. 올해는 금투세도 없고, 증권거래세도 확 줄었다. 주식 매매에 세금이 거의 안 붙는 기형적 구조다. 금투세가 무산된 만큼 증권거래세를 다시 올리는 건 불가피하다. 인상이 아니라 환원이다.
셋째, 배당소득 분리과세 확대도 논란이다. 분리과세는 종합소득에 합산하지 않고 별도로 과세하는 제도다. 세 부담이 줄어드는 특혜 조치다. 지금도 배당소득은 이자소득과 합쳐 연 2000만원까지 분리과세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배당소득이 연 2000만원을 넘어도 분리과세해 주기로 했다. 개인투자자는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조건이 까다롭고, 최고세율(배당소득 3억원 초과)이 당초 25%에서 35%로 높아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배당소득 2000만원을 받으려면 삼성전자 주식으로 치면 10억원가량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자산가에게 굳이 분리과세 혜택을 줘야 하나. 세수 부족으로 근로소득세·상속세 감면 논의도 기약 없이 중단한 마당에.
‘코스피 5000’ 공약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던 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처음부터 증시를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포퓰리즘으로 이용할 요량이었다면 세제개편안 완화를 택할 것이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정권 내내 끌려다닐 게 틀림없다. 반대로 증시를 선진국 틀로 바꿔 밸류업을 해 볼 의지가 있다면 개편안을 밀어붙여야 한다. 차제에 개인투자자도 약자 코스프레를 그만했으면 한다. 그들보다 더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진짜 약자가 이 땅에 아직 많다.
고현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