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환경이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전자기기는 물론 낙뢰 등 자연현상에 이르는 모든 전자기 환경을 말합니다. 전기환경을 벗어난 일상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안전하고 편리한 전기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국내에서 낙뢰 전문성을 갖춘 유일한 기관이다.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전자기펄스(EMP, Electro Magnetic Pulse) 보호 분야에서도 세계에서 손꼽는 기술력을 보유했다. 송전급 피뢰기용 고압 바리스터 핵심 기술을 비롯해 최근에는 고출력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선택가열 기술까지 개발했다.
KERI 전기기기연구본부 전기환경연구센터를 이끄는 강성만 센터장은 “EMP는 흔히 핵폭발이나 적대국 핵심 기반시설을 무력화하기 위한 기술로 알려졌지만 이는 목적성에 따라 의도가 분명한 경우에 해당하며 낙뢰나 우주태양풍과 같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EMP도 있다”면서 “EMP 보호 기술 연구가 국가적으로나 개인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EMP 공격이나 낙뢰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서지보호기(SPD)가 필수적인데 여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이 바로 바리스터(Varistor)다. 바리스터는 단시간에 과도한 전류가 유입되면 이를 우회시켜 전자기기가 충격을 입지 않도록 해준다. 바리스터가 견딜 수 있는 전류량이 많을수록 더 강력한 EMP를 방어할 수 있다.
센터는 세계 최고 수준 금속산화물바리스터(MOV)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출력전자기펄스(HPEMP)로부터 전력망을 방호하는 1500A급 전원보호용 보호기를 개발했다. 송전급 피뢰기에 적용할 수 있는 성능의 이 MOV는 앞서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현재 국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수출되고 있다.
기후변화로 전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낙뢰 연구도 센터의 중요 임무다. KERI는 30여년 전부터 낙뢰 관련 대책안 수립 및 기술표준안 제정에 기여해왔다. 한발 더 나아가 해상풍력단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정극성 낙뢰 피해를 예방하는 새로운 풍력터빈 블레이드 설계법 고안에도 성공했다.
풍력터빈 블레이드에는 낙뢰를 끌어당겨 피해를 최소화하는 피뢰침의 일종인 수뢰부가 있지만 정극성 낙뢰는 패턴이 불규칙하고 전류도 커 풍력발전기 피해를 유발한다. 풍력터빈 블레이드를 대상으로 정극성 낙뢰 대책을 설계하고 실험적 검증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관은 전 세계에서 KERI가 유일하다.
강 센터장은 “현재의 낙뢰 방호 시스템이 수동적 방식이라면 앞으로는 드론 등을 활용해 능동적으로 낙뢰를 방호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고 관련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레인지가 음식을 가열하는 원리인 마이크로파 파동 성질을 이용하되 가열 위치를 제어해 근거리에서 선택적으로 온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도 최근 주목받는다. 센터가 개발한 고출력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선택가열 기술은 기존 10~15㎝ 수준의 도달거리를 약 3배 늘렸다. 물성이나 형태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원하는 부분만 가열할 수 있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당장 농업 분야에서 노지 및 병해충 방제 용도 상용화가 논의 중이며 이 외에도 겨울철 도로 위의 암살자 '블랙아이스'를 제거하거나 기름에 의해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용도 등으로 사용처를 모색 중이다.
강 센터장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으로서 민간에서 하기 어렵거나 오래 걸리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개발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창원=노동균 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