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노(政勞)유착 시대의 개막

2025-08-25

6개월 유예라는 조건이 달렸지만, 최근 분위기로 봐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하청업체의 하청업체의 하청업체의 노조가 임금협상을 하자고 하면 이에 당장 응해야 할 판이다.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ㆍ3조 개정안)에서 사용자를 ‘실질적ㆍ구체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자’(2조 2항)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사장-노동자로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하청업체 직원이 ‘당신네 회사가 원가 절감을 해서 우리 임금이 깎였으니 책임져라’고 원청에 가서 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교섭에 불응하면 원청회사는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현대차의 경우, 국내 1ㆍ2ㆍ3차 벤더만 대략 600여 개다. 대기업이 1년 내내 노사협상만 하다 날 샌다는 건 결코 엄살이 아니다. 어쩌면 원청-하청이 교섭 끝에 임금 인상을 결정하고 나서, 정작 그 인상분은 교섭에 참여하지 않은 하청업체 사장이 책임져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얼굴 모르는 하청업체와 교섭하고

해외 공장 건립도 노조 허락받아야

권력-노조 유착이 선을 넘고 있다

에이, 그래도 영세한 하청업체가 어떻게 힘센 대기업에 드잡이를 할 수 있겠냐고? 아니다. 선례가 있다. 삼성전자 협력사인 ‘이앤에스’ 노조는 임금 체불 등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자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가 직접 나서라”고 압박했다. 또 뭉치면 된다. 현대제철 협력업체 직원들로 구성된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는 25일 “진짜 사장 현대제철은 하청 바지사장 뒤에 숨지 말라”며 원청(현대제철)을 곧 고소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민노총이 있지 않은가. 얼굴 붉힐 만한 일은 민노총이 하청을 대리해 주면 된다. 일종의 에이전트 개념이다. 민노총으로선 수수료(조합비)도 받으면서 사각지대에 있던 하청업체를 우군으로 포섭하니 일석이조다. 하청업체를 줄줄이 엮다 보면 아예 ‘산별 교섭’을 하자고 원청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원청-하청 변화만이 아니다. 노동쟁의 범위도 거의 무한대로 넓어진다. 기존엔 임금ㆍ근로시간ㆍ복지 등 직접적인 항목으로만 한정했다면, 이젠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2조 5항)도 쟁의행위에 포함됐다. 정리해고ㆍ구조조정ㆍ인수합병은 물론이요, 특정 설비를 사들여 근로조건이 변경됐다면 파업 사유가 된다는 거다. 당장 미국 관세 협상 선봉에 선 조선업계로선 미국에 공장 짓겠다고 나섰다가는 줄파업을 각오해야 한다. 이 판국에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노조도 국익을 생각할 것”이라는 한가한 소리를 하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가장 논란거리는 노조에 손해배상을 사실상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불법 파업에 대해 청구를 할 수는 있다. 대신 무척 까다롭다. 손해를 입힌 노동자가 노조에서 어떤 지위ㆍ역할을 했는지, 쟁의행위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 등을 고려해 책임 비율을 정해야 하는데, 이게 사용자 몫이다(3조 3항). 즉 손해를 당한 기업이 개별 조합원이 얼마나 문제를 일으켰는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기관도 아닌 일개 회사가 특정인의 책임 정도를 정밀하게 판별해 낼 수 있을까. 설사 입증했다 해도 ‘법원은 배상의무자의 경제 상태와 부양의무, 최저생계비 등을 고려해 감면할 수 있다’(3조 4항)고 하니, 차라리 배상 청구를 안 하는 게 속 편할 듯싶다.

노란봉투법은 쌍용차 파업 사태(2009년)에 대해 법원이 2014년 47억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부 시민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 데서 유래했다. 법이란 무릇 중립적이고 양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헌정하듯 철저히 노조만을 위한 법을 만든다는 게 놀랍다. 과거 권력이 재벌에 특혜를 준 정경유착은 그나마 이를 부끄러워해 음지에 있었다면 작금의 권력-노조 유착은 숨기기는커녕 아예 대놓고 편파적인 법을 제정할 만큼 대담해졌다. 민노총에는 천국이겠지만, 노란봉투법과 함께 한국 경제에는 이제 지옥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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