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 같지는 않은 사제단 50년, 그리고 신부 문정현

2024-09-26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을 처음 만난 건 2009년 5월5일 어린이날이다. 신부 3명이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집전했다. 일회성 미사가 아니었다. 그해 3월18일부터 주일 빼고 매일 열었다. ‘거리 미사’를 이끈 신부 중 한 명이 문정현이다. 어깨 근육 힘줄이 끊어졌는데도 희생자들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버티며 천막에서 먹고 자며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 뒤 근처 공사 예정지인 폐허를 함께 산책할 때 “왜 거리로 나왔냐”고 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수십년간 이뤄왔던 삶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극소수를 위한 개발 논리가 너무 뼈저리게 느껴졌다”고 했다. “곁에 있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고 했지만 온 힘으로 “여기저기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말로 행동”으로 도우려 했다. 거리 미사는 그해 9월 국무총리 정운찬의 유가족 조문을 끌어냈다. 개신교와 불교·원불교 성직자들 참여도 이끌며 참사 현장을 ‘종교의 성지’로 일궜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 프란치스코>(알에이치코리아)에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을 읽던 2013년 문정현을 떠올렸다.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를 하지만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정당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십계명과 복음서를 기반으로 한 위대한 정치에 참여하는 겁니다.” ‘위대한 정치’는 “인권 유린과 착취 또는 배척 상황, 교육 또는 식량 부족 상황을 고발하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어디에 있더라도 오직 정의를 편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해야 할 국지적인 과업 몇 가지를 떠맡을 따름”이라는 신부이자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말을 접했을 때도 먼저 생각난 이가 문정현이다.

2000년 이후 기자로 일하며 직간접적으로 확인한 사제단의 여러 활동은 ‘위대한 정치’에 부합한 듯했다. 대추리와 새만금 추방 현장, 쌍용차 투쟁 현장 등지에서 ‘밀려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인권과 평화, 재벌 문제에서도 사제단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강건하고, 불편부당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이어지던 2016년 11월21일 사제단은 “박근혜 권력을 탄생시킨 공범이며 국정문란의 부역자인 새누리당은 당장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야당들에도 경고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촛불민심에 기대어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접기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 들어 사제단 활동과 소식은 잘 듣지 못했다. 정의가 구현된 세상은 아니었다. 사제단이 오래 폐지를 주장한 국가보안법은 존속했다. 토건과 개발은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산재로 죽어 나갔다. 김용균이 죽었을 때는 성명서를 낼 법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천주교 내에선 여러 신자 단체와 여러 교구의 신부, 수녀들이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님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낸 게 다다. 이 공동 입장문에도 사제단 이름은 없다.

윤석열 정권에선 사제단이 성명서를 자주 내고, 신부들은 여러 활동을 했다. 소식을 들을 때면 사제단이 약자와 소수자, 추방당한 자보다는 ‘야권 권력자들’에 우선 공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법원에 정경심 조국 부부 탄원서 제출’이라는 제목의 자료, ‘임은정 검사가 검찰에서 정년퇴직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는 제목의 호소문 등을 보고 든 생각이다. 추방과 배제의 현장이 아니라 여의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불편부당하고 강건한 언어는 정당의 언어와 닮아갔다.

다시 문정현을 떠올려본다. 2023년 3월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봄바람’에 나서는 그를 다시 만나러 제주로 갔다. 그는 여전히 거리에 서 있었다. 국도 바로 옆 천막에서 12년간 강정 기지 반대 미사를 집전했다. “관심 두는 건 고통받는 사람뿐이야”라던 그는 순례에서 제주 칼호텔 해고 노동자, 남방큰돌고래 보호운동가, 가덕도신공항 반대 활동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월성 원자력발전소 인접 주민, 하제마을 미군 공여 반대 활동가,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다. “호소할 데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 일원이다. 강정과 새만금 현장을 오간다. 근황을 전한 시인 송경동은 “반미에서 인권, 생태, 평화, 노동, 여성으로 사상, 운동, 신앙의 지평을 넓혔다. 고통의 현장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제단은 결성 50주년을 맞아 “교회마저 세상의 슬픔과 번뇌를 외면한다면 사람들이 서러운 눈물을 어디서 닦을 것인가. 우리부터 사제단을 결성하던 때의 순수하고 절실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초심의 자리는 지금 문정현이 선 자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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