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오시난 서울시 명예시장의 축구 이야기

대한민국 축구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211개 가입국 중 여섯 나라만 이룬 위업이다.
영욕의 월드컵 역사에서 대한민국과 가장 끈끈하게 엮인 나라가 터키(현 국명 튀르키예)다. 두 팀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처음 만났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황폐한 환경에서 한국은 일본을 꺾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항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미 공군 수송기를 타고 가야 했다. 스위스 월드컵 개막일인 6월 16일 밤 9시에 한국 대표팀은 취리히에 도착했다. 긴 널빤지로 만든 의자가 너무 높아서 발이 대롱대롱 흔들리는 상태에서 무려 48시간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렸을 때 선수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 첫 상대 헝가리에 0-9로 졌고 두 번째 상대 터키에 0-7로 참패한 뒤 짐을 싸야 했다.
이후 한국 축구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11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터키는 1954년 이후 한 번도 월드컵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다가 2002 한-일 월드컵 때 48년 만에 본선에 올랐다. 역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가 펼쳐진 현장이었다.
한국 프로팀 지원했지만 입단 직전 무산

200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형제의 나라’ 터키를 열렬히 응원했고, 3-4위전에서 두 팀이 승패를 초월한 우정의 승부를 펼쳤다는 사실은 축구팬이라면 다 안다. 이 과정에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훈훈한 미담이 있다. 그 속에 깊숙이 발을 담근 사람이 2002 월드컵 당시 터키 대표팀 연락관을 맡았던 시난 오즈투르크다. 축구 선수 출신으로 서울대로 유학 왔던 그는 2008년 한국으로 귀화해 오시난(吳施暖)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따뜻한 마음을 널리 펼친다’는 이름을 가진 그는 한국인 약사와 결혼해 2남1녀를 뒀고, 한국인과 외국인을 하나로 모아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스탄불 출신인 시난은 고교 시절까지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왼발잡이로 레프트 윙과 공격형 미드필더 등을 맡았다. 발이 빠르고 기술이 좋아 이스탄불 도시 대표팀과 터키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뛰었다.
집안의 반대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수도 앙카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물리공학을 전공했다. 한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터키 자동차 회사의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유학 온 게 1997년이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편입해 다니던 중 시난은 우연히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보게 됐다. ‘저 정도 수준이면 나도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 부천 SK(현 제주 SK) 클럽하우스에 무작정 찾아갔다. 당시 감독이었던 니폼니시(러시아)는 터키 클럽을 4년간 맡은 적이 있었다. “터키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서울대에 유학 왔는데 SK에서 뛰고 싶다. 테스트를 받을 기회를 달라”고 했더니 니폼니시는 대뜸 “유니폼과 축구화 챙겨서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시난의 실력을 인정한 니폼니시는 다음날도 오라고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연습생 신분으로 학업과 축구를 병행했다. 당시 SK에는 현 K리그 감독인 김기동(FC 서울), 윤정환(인천 유나이티드), 이을용(경남 FC) 등 스타들이 즐비했다. 시난의 K리그 입단은 성사 직전 무산됐지만 그는 국내 메이저 신문에 축구 칼럼을 쓰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02 월드컵 터키 대표팀 연락관을 맡게 됐다.
케르반그룹을 이끌고 있는 오시난 회장을 서울 이태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02 월드컵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2002 월드컵의 가장 큰 승자는 한국과 터키죠. 일본도 공동 개최국이었지만 준비상황, 응원 열기, 손님맞이 등에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었어요. 48년 만에 본선 진출한 터키는 16강도 언감생심이었는데 3위까지 했잖아요.”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각 팀별로 자원봉사자 응원단을 조직했다.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와 C조에 속한 터키는 6·25 참전국이어서 더 큰 관심을 받았다고 오 회장은 말했다. “인천에서 코스타리카전이 열리기 사흘 전에 연락이 왔어요. 문학경기장 앞에 한국인 응원단 5000명이 모여 있으니 와서 터키어 응원구호 좀 지도해 달라는 겁니다. 귀네슈 감독님도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한국과 터키는 승승장구, 4강까지 올랐다. 시난은 두 팀이 결승이든 3-4위전이든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둘 다 준결승에서 졌다. 대구에서 3-4위전이 열리기 전날 터키 선수들이 모여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시난 연락관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내일 3-4위전은 꼭 이겨야 한다. 다만 우리가 한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으니 너무 거친 몸싸움은 피하고, 누가 이기든 어깨동무 하고 한국 관중에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몇몇 주전 선수가 “우리도 그럴 생각이었다”고 화답했다.
『나는 대한민국을 자랑…』 책 출간 준비

경기 당일, 국기를 올리는 것도 문제였다. 터키는 가로 30m×세로 20m 대형 국기를 공수해 왔고, 지금까지는 한국 응원단이 국가 연주에 맞춰 펼쳐 줬다. 그런데 상대가 한국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국기 담당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시난은 “경기 전에 올리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으니 한국이 이기면 우리 국기도 올리자”고 했다.
국가 연주 순간, 시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붉은 악마 응원단 자리인 관중석 왼쪽에서 대형 터키 국기가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닌가. 붉은 악마 응원 리더가 “한국과 터키는 형제 나라 아니냐. 우리가 펼쳐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600㎡짜리 대형 국기를 받쳐 든 수천 명 중에 터키인은 단 한 명이었다고 한다.
경기는 3-2, 터키 승리로 끝났고, 양 팀 선수들은 약속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경기장을 돌았다. 그 바로 뒤에 태극기를 든 시난이 있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FIFA가 주관하는 평가회가 열렸다. 제프 블라터 회장은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은 축구를 통해 나라끼리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베스트 사례”라고 극찬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시난은 축구용품 업체와 무역업 등에 종사했고, 돼지고기와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할랄 음식을 제공하는 ‘케르반’이라는 식당도 열었다. 현재는 서울 이태원과 강남에 아홉 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비즈니스 모임인 GBA(Global Business Alliance)를 설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GBA는 국내에 거주하는 65개국의 외국인 CEO, 각국 외교관과 상무관, 국내 CEO들이 모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을 도모하는 단체다. 오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CEO 모임에 나가 봤는데 외국인은 나 혼자였어요. 한국에 온 사업가들도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경향이 있었죠. 이분들을 함께 모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비즈니스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 글로벌 관광 명예시장도 맡아 의료관광 등 특화된 영역을 개척하는 데도 힘을 보태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자랑하고 싶다』는 제목의 책을 준비하고 있는 오 회장은 “저는 튀르키예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빚어진 사람입니다. 축구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고, 월드컵을 치르면서 한국인의 정과 멋진 문화에 푹 빠지게 됐죠. 이제는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무패로 통과한 대한민국 축구는 1년 남은 본선을 향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었다. 세계인의 축구 제전에서 우리는 또 어느 나라와 인연을 맺고 어떤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낼까.

정영재 칼럼니스트. 중앙일보·중앙SUNDAY 스포츠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 2013년 스포츠 기자의 최고 영예인 ‘이길용체육기자상’을 받았다. 현재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스포츠 다큐: 죽은 철인의 사회』 등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