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우리 법 중 드물게 허용되는 ‘선물’의 법적 성격과 한도를 담고 있다.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부조 목적’에 해당해야 하고, 100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공직은 물론 우리 사회의 선물을 고리로 한 일상적 부패 관행을 제대로 인식하고 근절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적 상례’에 맞는 선물과 ‘잠재적 뇌물’ 사이의 경계가 흐릿했기 때문이다.
2023년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당대표 당선 며칠 뒤 그의 부인이 김건희씨에게 명품백을 선물한 사실이 드러났다. 선물은 “당선을 도와줘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발견됐다. 당시 3·8 전당대회에서 ‘윤심 개입’ 논란 속에 대역전한 김 의원의 석연찮은 당선 과정을 감안하면 뇌물인지 선물인지 모를 행태도 문제지만, 해명이 더욱 심각하다.
김 의원은 “신임 여당 대표 배우자로서 대통령 부인에게 사회적 예의 차원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이 원만히 업무 협력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고도 했다. 대통령 부인에게 준 100만원대 명품백 선물이 관행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집권 세력 2인자조차 이렇다면 상납이 일상화된 부패의 도가니라 할 수밖에 없다. 여당 대표와 대통령 배우자가 무슨 업무 협력에 개입하고, 사회적 예의를 차릴 관계인지도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는 먹고살기 위해 피를 파는 허삼관이 아들의 상관을 접대하려 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50대 나이에 한 달 전 매혈을 하고도 또 피를 팔아 술·담배를 사고 과하다 싶을 만큼 음식도 마련한다. 구토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접대를 위해 술 마시는 장면은 짠하기 그지없다. ‘몸은 상해도 감정은 상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과거 한국 사회도 명절이면 고가 양주나 과일상자 들고 상관의 집으로, 갑의 위치인 공무원이나 원청업체 임직원 집으로 인사 다니던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업무 협력이기보다는 관계에 기름칠하는 잠재적 뇌물이었음은 불문가지다. 권력자에 대한 선물에 ‘의례’나 ‘예의’란 말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김 의원의 ‘사회적 예의’ 강변은 오히려 ‘뇌물 자복’으로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