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26만장’이 불러온 에너지 논쟁···“전력량보다 망이 문제”

2025-11-16

특정 지역 AI 수요 집중 땐 전력망 부담…“AI데이터센터 분산 배치해야”

전력 수요 증가는 발전량·탄소중립 과제와 맞물려 다층적인 논의 낳아

국내 도입 예정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이 전력 수급 논쟁으로 이어졌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엔비디아가 주면 뭐 하나. 전력이 있냐”며 “AI 데이터센터 하나 돌리는데 전력이 얼마나 드는지 다 알지 않냐”고 말했다.

최신 엔비디아 GPU 블렉웰 72개가 들어가는 AI 플랫폼 GB200 NVL72는 랙(RacK)당 약 120~140㎾의 전력 소비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6만장을 도입하면 3600랙 이상이 필요해 총 432㎿ 이상의 전력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데이터센터의 냉각·전력손실 등을 포함하는 전력 효율지표인 PUE(Power Usage Effectiveness) 1.2(최근 업계 평균치)를 적용하면 대략 500~600㎿의 규모의 전력량이 필요하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1기 전력량(1GW=1000㎿)의 절반을 넘는 수준에 해당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500~600㎿ 수준의 추가 수요가 당장의 전력난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과장된 해석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전력 예비율이 높아 추가 공급 여력이 충분한 상태라는 분석이다. 한국전력거래소(KPX)의 실시간 전력수급현황에 따르면 11월 기준 공급 예비력은 28GW(2만8587㎿)로 공급예비율이 44%가 넘는다. 전력수요가 피크에 달했던 지난 8월에도 9GW(9060㎿)로 공급예비율은 9.4%였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햇볕이 좋은 날 낮시간에는 전력 예비율이 40~50%를 넘어간다. 물리적으로 전력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논란이 부풀려지고 있다”라며 “이는 AI 전력 수요를 과장해 탈원전 정책이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한계를 부각시키려는 시도로 과도한 우려를 조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GPU를 가동시킬 AI데이터센터의 입지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부담이 생길 수도 있으나 전체 전력 수요 총량만 보면 GPU 26만장이 기가와트(GW) 수준의 전력 문제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추정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 SK, 현대차, 네이버 등 각사에 5만~6만장씩 순차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보여 전력 수요 증가가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현재 전력시스템으로도 감당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 아직 소버린 AI가 본격화돼 수요를 창출하기 전이어서 현시점의 우려는 실제보다 과장돼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헌석 위원은 “챗GPT나 제미나이는 미국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국내 이용자가 사용한다고 해도 국내 전력을 쓰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혼동하며 국내 전력 부담으로 과도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량 자체보다 전력망 문제 시급

전문가들은 GPU 26만장 도입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보다는 전력망과 AI데이터센터 입지 문제가 더 핵심적인 과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각각 5만장씩 GPU를 구매하는 삼성, SK, 현대차는 ‘AI 팩토리’를 구상하고 있다. AI 팩토리는 설계, 공정, 운영, 장비, 품질관리 등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아우르는 모든 과정에 AI를 적용한 스마트 공장이다. 이를 위해서도 GPU를 가동할 AI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특정 지역에 AI 수요가 집중될 경우 전력망 안정성에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신규 송배전선 건설에 10년 이상 걸리는 만큼 지역별 전력망 여건에 맞춰 AI데이터센터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밝혔다.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수년 전부터 문제로 지적돼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3년 발표한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설립 신청까지 포함하면 2029년에는 수도권 비중이 8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헌석 위원은 “수도권의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안 짓겠다는 모라토리엄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2년 11월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2024년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통해 전력자립률이 낮은 수도권에 신설되는 특정 규모 이상의 설비에 대해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김선교 위원은 “수도권은 데이터센터 신규 인허가가 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전력 수급 부담이 크고 현재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트만 해도 5~8GW까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며 “지난 정부에서 용인에 LNG발전소 건립과 석탄화력발전 등을 포함한 전력 공급 방안을 검토한 바 있으나 현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계획은 공식화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신규 AI데이터센터 건립을 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데이터센터 건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신규 데이터센터 부지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들이 후보로 언급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출력 변동성과 간헐성으로 인해 공급의 안정성 측면이 과제로 지적돼왔다. 이헌석 위원은 이를 두고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과제를 뒤죽박죽 섞어서 혼동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재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 중 10% 수준으로 공장 가동에 차질을 주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출력 변동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대폭 확대한 미래의 과제”라고 했다.

또 AI 데이터센터가 365일 24시간 최대 부하로 가동된다는 인식은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석광훈 위원은 “기업이 하는 AI 훈련은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면 이용자가 AI에 질문을 하는 등 서비스를 제공받는 때는 상대적으로 소비량이 낮다”며 “훈련은 2~3개월 단위로 이뤄지며 전력망 상황에 따라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구글, MS, 아마존 등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은 AI 연산에 따른 전력망 부담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탄소 인지 스케줄링(Carbon-aware scheduling)’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컴퓨팅 작업을 전력망의 탄소 배출 강도가 낮은 시간대나 지역으로 분산 배치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또한 미국 텍사스 전력신뢰도위원회(ERCOT) 등에서는 데이터센터나 암호화폐 채굴장 등 대규모 전력 소비자를 ‘보조 사업자’로 분류해 전력망 안정화를 강화했다. 석광훈 위원은 “전력망이 비상 상황일 경우 출력을 낮추고 필요 시 출력 상향도 가능하다”라며 “AI데이터센터는 전력망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 얼마든지 전력망 친화형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계속될 전력 수요 논쟁

AI 확대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는 발전량 확대뿐 아니라 탄소중립 과제와 맞물려 다층적인 논의를 낳고 있다. GPU 26만장 도입으로 촉발된 전력수급 논쟁은 현재로선 관리 가능한 범주에 있지만 소버린 AI와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는 한국에서는 유사한 전력수급·에너지 전략·탄소중립 논쟁이 향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비서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GPU 26만장이 도입되어도) 지금 현재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라면서도 “앞으로 들어올 GPU가 더 있을 것”이라며 전력 인프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량은 약 415TWh(테라와트시=1000GWh)로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에 달한다. 또한 2030년까지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약 945TWh로 전 세계 소비의 약 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데이터센터는 미국이 하이퍼스케일급(100㎿ 이상) 기준으로 전체 용량의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46% 중 상당 부분을 중국과 유럽(각각 16%·15%)이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전력수급 상황은 어떨까.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데이터센터 확장과 그에 따라 전기요금 상승이 지역의 정치 이슈로 부상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수급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하나의 사례”라고 말하며 “미국은 전역에 데이터센터를 많이 지으면서 모든 에너지원을 확대하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NEF(BNEF)는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2배 이상 증가해 2024년 약 35GW에서 78GW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손 대표는 “한국에서도 지금까지는 괜찮지만 만약 목표대로 AI 3강이 된다면 향후 GPU도 더 많이 들어오고 전력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은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해외 AI 모델을 활용하지만, 미래에 소버린 AI가 성공해 국내 모델로 전환된다면 전력 수요 측면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 확대로 인한 전력 수요의 정확한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20여 년 전 디지털화가 부상했을 때에도 전세계적으로 전력 수요 급증 전망이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효율 개선으로 공급 확대 예측이 빗나간 사례도 있었다. 김선교 위원은 “2030년까지 전력 수요 증가가 예상되지만 이후에도 이 구조가 지속될지, 아니면 효율화로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지는 판단이 쉽지 않다”라며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인공지능 분야의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는 한편, 탈탄소화라는 전력 수급의 장기적 방향성과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의 균형을 모색하는 복합적인 전략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탄소화 전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인프라를 확충할 경우 향후 10~20년 동안 구조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강원도 석탄발전소 신규 가동이 중장기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사례처럼 현재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구축한 인프라가 이후에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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