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구 수성못 인근에 새로 단장한 공중화장실이 논란이 됐다. 이 화장실은 꽤 우아하다. 전체적으로 원통형인데, 목재 루버(가느다란 부재를 창 등 건물 표면에 빗살처럼 설치한 것)가 그 형체를 감싼다. 낮의 루버는 화장실 안에 은은한 자연광을 들여오고, 밤의 루버는 화장실을 자체 발광하는 오브제로 만든다. 디자인은 스페인 출신 건축가로, 한국에서 다수 프로젝트를 한 다니엘 바예가 맡았다. 이 근사한 화장실이 입길에 오른 건 다름 아닌 비용 때문이었다. 신축도 아니고 리모델링인데, 나랏돈이 9억원이나 투입됐다는 사실에 놀란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언론은 수성구가 대구에서는 부촌으로 꼽히는데, 그곳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는다고 했다. 그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일 테다: 왜 화장실에 이렇게까지 합니까?
배경이 공중화장실로 같아서 그런지, 이 사건은 지난해 여름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대사 한 토막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노동자 히라야마인데, 그는 좀 별난 인물이다. 화장실을 쓸고 닦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치과의사가 어금니 안쪽을 비출 때 쓰는 것 같은 거울을 들고 다니며 변기 안쪽까지 샅샅이 훑어 오물을 제거한다. 호텔 화장실처럼 화장지 끄트머리를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접어놓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의 젊은 동료는 이런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다소 철이 없어 보이는 동료가 어느 날 그에게 묻는다: 이런 일을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수성못 화장실의 건축가나 도쿄 화장실의 청소부나 직면한 질문은 같다. 이런 데, 즉 화장실은 디자인이든 청소든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다. <퍼펙트 데이즈>에 청소 이야기만 나와서 그렇지, 디자인이라고 할 것 같으면 영화 속 화장실에도 만만찮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일반 공중화장실이 아닌, 도쿄 시부야구가 시부야관광협회·일본재단과 협력한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차원에서 만든 화장실이다. 17개 화장실을 설치했는데, 한 개당 든 비용이 1억~2억엔(10억~20억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성못 화장실 같은 화장실이 시부야구에만 17개나 있는 셈이다. 시부야구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도쿄 토일렛이 ‘값비싼’ 이유가 있다. 디자이너 16명이 참여했는데, 일단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란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마키 후미히코, 이토 도요오, 반 시게루까지 하면 ‘건축계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만 넷이다. 후지모토 소우는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차세대 건축가다. 건축가만 있는 건 아니다. 애플이 ‘모셨던’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도 참여했다.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고수들이 개성과 아이디어 넘치는 화장실을 시부야 곳곳에 공급한 게 바로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다.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일본 특유의 극진한 접객 문화를 뜻하는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제대로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그들은 그 핵심이 공중화장실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더 도쿄 토일렛의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손님을 환대하는 화장실’에 대해 고민하고, 또 재해석한 아이디어를 냈다. <퍼펙트 데이즈> 관객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을 화장실은 아마 반 시게루가 제안한 투명한 유리 화장실일 것이다. 이 화장실은 노란색, 붉은색, 보라색, 푸른색 등 색색의 통유리로 감싸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전기적 작용으로 유리가 온통 불투명해지는 반전이 일어난다. 이로써 반 시게루가 해결하고 싶은 공중화장실의 고질적 문제는 두 가지였다. 무심코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무척 불결한 상황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안에 누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소니 뮤직 프로듀서 출신인 가주 사토는 화장실 전체에 음성 인식 기술을 적용했다. 공중화장실의 위생 문제에 유독 예민한 사람이라면 환영할 만한 디자인이다. 문 여닫기, 변기 물 내리기, 수도꼭지 틀기 등을 모두 음성 명령으로 해결할 수 있다. 디자인팀이 공중화장실에 관한 연구자료를 섭렵해보니, 이용자 10명 중 6명은 변기 레버를 발로 밟아 물을 내리고, 5명은 화장지를 손에 든 채 문을 열고, 4명은 문을 엉덩이로 밀어 닫는다고 한다. 손을 일절 쓰지 않아도 되는 화장실을 고안한 이유다. 마침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한창 준비할 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비접촉’이 화두가 됐다. 결과적으로 가주 사토의 아이디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조응했다.
안도 다다오는 화장실을 낭만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화장실은 둥근 지붕을 마치 처마처럼 길게 내밀고 있는데, 안도 다다오는 이 화장실이 비를 피하려고 잠깐 머무는 장소, ‘아마야도리(あまやどり)’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수직 루버로 감싸 자연의 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안팎을 드나드는 이 공간은 화장실이면서 하나의 정자와 같은 느낌을 준다. 패션브랜드 겐조의 디자이너 니고가 디자인한 화장실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의 미니어처 같다. 그는 화장실에서 ‘하라주쿠 골목 한구석의 오래된 집’을 떠올리자고 한다. 마크 뉴슨은 일본의 신사(神社)에서 볼 법한 건축양식을 도심 한복판 화장실로 옮겨왔다.


수성못 화장실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더 도쿄 토일렛은 하나의 전범(典範)이 될까? 더 도쿄 토일렛의 주요 파트너인 시부야관광협회 대표 준고 가나야마는 말한다. “화장실은 작지만, 동네를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이웃한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보자. 경치 좋은 곳에 놓일 공중화장실 디자인을 맡아본 어느 무명의 건축가에게서 푸념을 들은 적 있다. 그놈의 예산 때문에, 그놈의 표준 시방서(건축 공사 시 자재 종류·시공법 등을 제시한 매뉴얼) 때문에 뭐 하나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란다. 이건 그가 맡은 화장실에 꽤 큰 패착이 됐는데, 볼일을 보면서도 풍광을 감상할 수 있게 성인 눈높이로 가느다란 창을 내는 일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도면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저렴한 흰색 미닫이 창틀을 적당히 그려 넣어야 했다. 이런 풍토에서 9억원짜리 화장실이 논란이 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수성못 화장실은 대담한 시도였으며 귀감도 된다. 어디를 가나 있어야 하고, 어디를 가나 한 번쯤은 들르게 되는 공중화장실은 그 도시가 방문자를 대하는 태도를 응축해 보여준다.
하지만 더 도쿄 토일렛은 화장실이 예쁘고 깔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가 어떤 손님도 배제되지 않게 ‘경계 없는 화장실’ 디자인을 지향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이동을 고려해 턱을 없애거나, 휠체어가 수월하게 드나들게 폭을 확보하는 건 기본이다. 더 도쿄 토일렛의 핵심 지침 중 하나는 각 화장실의 한 칸만큼은 성별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포용할 범주를 성소수자까지 넓힌 셈이다. 특히, 인공기관을 달고 배변을 처리해야 하는 장루 환자를 고려한 위생시설을 갖추게 했다. 이들은 장애인 중에서 1% 정도다. 얼마나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화장실을 만들지 고민한 흔적이 짙다.
더 도쿄 토일렛은 ‘공중’화장실의 원래 뜻 그대로 정말 ‘모두’를 반기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상상해보라,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른 화장실에서 이런 환대를 마주하는 일을. 공중화장실 방문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양성에 관해 생각할 계기를 갖는다는 건 그 사회에 엄청나게 큰 자산이 될 게 틀림없다. 더 도쿄 토일렛이 위대한 프로젝트라고 여겨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