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사와의 갈등 끝에 집필에서 하차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후 제가 쓴 대본 줄거리를 바꿔 주인공을 다시 살려놨더라고요. 원래는 죽는 설정이었는데요. 이런 변경, 저작권 침해 아닌가요?”
드라마 작가 A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제작사와의 마찰로 집필에서 배제된 후, 자신이 쓴 시놉시스와 극본 일부가 새로운 작가에 의해 수정된 것이다. 특히 주인공이 죽는 것으로 마무리되던 내용이, 갑작스럽게 부활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기존 작가의 동의 없이 이뤄진 줄거리 변경. 이는 과연 저작권 침해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경우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13조는 저작자의 인격적 권리 중 하나로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목 등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보장한다. 저작자 동의 없이 저작물의 본질적인 내용이 변경되면, 이는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2015. 1. 16. 선고 2013가합85566) 판결은 이 원칙을 명확히 보여준다. 해당 사건에서 드라마 작가는 주인공이 죽는 설정으로 시놉시스를 작성했고, 실제 극본에도 그 내용을 반영했다. 그러나 작가 교체 후 제작사는 주인공이 하관 직전 관속에서 되살아나는 설정으로 줄거리를 변경했다. 법원은 이를 두고 “원고 저작물의 본질을 해하는 중대한 내용 변경에 해당하며, 이는 저작물에 대한 동일성유지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물론 모든 변경이 침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법은 일정한 경우 저작물 변경을 허용한다. 예컨대, 교육 목적의 표현 수정이나 프로그램의 기술적 변형 등은 예외로 인정된다. 또 저작자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변경에 동의했을 경우에도 동일성유지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쟁점은 '동의 여부'다. 저작자가 계약 과정에서 변경 가능성에 동의했는지, 또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진다. 법원은 계약의 성격, 체결 과정, 당사자 지위, 저작물의 이용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제작사와 작가 간 계약서에 이러한 변경 가능성이나 동의 범위를 명확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향후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강선호 변호사는 “동일성유지권은 일신에 전속하는 권리이므로 저작자로부터 저작권을 전부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작물의 본질을 해하는 정도의 내용 변경의 경우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 침해가 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