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집값’ 잡으려면 강북 매력 높여야

2026-01-04

서울 강북은 시간이 과거에 멈춰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변두리로 갈수록 도로가 좁아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낡은 건물도 흔하다. 강남에는 지하철 노선이 여러 개 교차하는 곳이 수두룩한 반면, 강북은 노선 자체가 듬성듬성하다. 이 극단적인 비대칭이야말로 집값 불안의 출발점이다.

지난해 송파구 아파트값이 21% 오를 때 중랑구는 0.79% 상승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 규제 이후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본격화했지만, 이처럼 집값이 양극화되다 보니 ‘ 집값이 미쳤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마저 “수도권 집값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토로했을 만큼 집값 불안이 심각하다. 집은 많지만 정작 살고 싶은 주거 환경과 양질의 주택은 부족한 현실 때문이다. 해법은 없을까. 강북을 강남 못지않게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 수요를 분산하면 강남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강남 쏠림 놔두면 집값 대책 없어

강북 살기 좋으면 수요 분산 가능

도서관·공원 등 편의시설 늘려야

일단 강남과 강북의 현실부터 보자. 코로나19 직전, 서대문구 충정로 뒷골목을 돌아본 적이 있다. 온 동네 건물과 계단이 온통 페인트칠 돼 있었다. 무분별한 재개발을 막고 거주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서울 강북엔 이런 곳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강남은 계속 변하고 있었다. 최근 삼성동·청담동의 새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가 부동산중개 사무실 창문에 붙은 시세표를 보고 놀랐다.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가 ‘60억원부터’였다. 진입 도로는 넓고 매끈한 아스팔트로 정비돼 있었다.

이 극명한 대비를 보고 있자니, 서울 집값 안정의 열쇠는 강남 공급 확대 못지않게 강북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떠올랐다. 강북은 서울의 정체성이자 거대한 보물창고다. 궁궐과 성곽, 유서 깊은 고택 등 한국다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그러나 그간 강북은 ‘낡고 불편한 곳’으로 치부됐다. 문화재도 적지 않지만 널리 알려지거나 매력을 드러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진정한 보존은 낡은 도시를 그대로 두는 데 있지 않다. 런던의 테이트모던이나 파리의 마레지구처럼, 오래된 지역에 현대적 창의성을 덧입혀 주변 공간을 혁신할 때 전통의 가치도 살아난다.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은 도쿄는 지난해 ‘글로벌 파워 도시 지수(GPCI)’에서 뉴욕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큰 점수를 땄다. 2002년 이후 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역사적 공간과 초현대적 기능을 결합해 도시 매력을 높인 결과다. 도시의 노화를 방치하지 않고 젊음을 수혈한 덕분에 인기 지역에 집중됐던 주거 수요는 도심 전반으로 분산됐고, 도시 전체의 활력도 되살아났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00만 명을 돌파했다. 상전벽해라 할 만큼 도시 매력이 급상승한 결과다.

강남 쏠림이 부추긴 집값 폭등은 국민의 삶을 갈수록 옥죄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누적된 가계부채는 매년 소비를 0.4%포인트씩 잠식하고 있다. 집값은 올랐지만 쓸 돈은 없는 ‘소비 동맥경화’ 상태다. 강남 아파트 소유자도 ‘영끌’로 대출 상환에 허덕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녀 세대의 주거 지원 부담까지 겹치면 지갑을 열기 어렵다. 이는 내수 경기를 질식시키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이제 강남 주택 공급만으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주택 공급을 전담하는 국토교통부 주택공급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주택공급추진본부는 올해부터 5년간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는 내용의 9·7 공급 대책 이행을 위한 조직으로 총 9개 과에 77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조직이다. 성과를 내려면 강북의 탈바꿈이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강북 내부 교통망을 과감하게 확충해 생활 편의를 높이고,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공공 도서관·체육관·공원을 대폭 늘려 강남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강북의 생활 인프라가 강남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오는 순간, 공급 부족도 강남 쏠림 현상도 자연스럽게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소비쿠폰처럼 쓰면 사라지는 선심성 재정 지출을 줄여 마련할 수 있다. 실물 인프라로 남을 뿐 아니라 극도로 침체한 건설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주거 평준화는 끝없는 소비 동맥경화와 자산 양극화를 막는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한 초당적 결단이 필요하다. 강북의 변화 없이는 집값 불안 해소도, 서울의 도시 경쟁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강북을 강남처럼 만든다는 각오로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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