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4일 방송된 '꼭두각시 엄마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소은, 한지현, 음악감독 김문정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모녀의 수상한 비밀
여기 11살 꼬마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어.

크리스마스 트리,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2층 집을 그린 그림이야. 이 아기자기한 그림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 엄청난 이야기를 지금부터 살펴볼게.
때는 2016년 1월, 천안의 한 찜질방이야. 임남숙 씨는 여기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뜨끈한 미역국과 포슬포슬 달걀찜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린 남숙 씨가 누군가를 불러.
"지민아! 얼른 와! 밥 먹자!"
그 말에 찜질방 TV 앞에 있던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7살 지민(가명)이야. 그리고 맛있게 미역국을 먹는 지민이 뒤로 한 여성이 다가와.
"언니, 매번 우리 지민이 밥까지 이렇게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너무 감사해요."
지민이는 찜질방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수진(가명) 씨의 딸이야.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이지만, 남숙 씨는 모녀를 가족처럼 아꼈어.

"이쁘고 천사처럼 참 착한 아이였어요. 우리가 봤을 때도 참 곱다, 이쁘다. 무슨 일을 할 때는 몸을 안 사리고 했어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다 참 착하다고 그러고 다 챙겼죠 그 애를. 친동생처럼 그냥 친딸처럼."
-임남숙, 찜질방 식당 운영
남숙 씨가 수진 씨를 처음 만난 건 몇 달 전이었어. 빚쟁이한테 쫓기고 있다며 수진 씨가 그 찜질방에 일자리를 찾아 온 거야. 40대 초반의 수진 씨는 아이를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엄마였어. 그런데 얼마 후, 남숙 씨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와.
"여기 고성 경찰서인데요. 김수진 씨라고 아십니까?"
여기는 충남 천안인데, 경남 고성 경찰이 수진 씨를 찾고 있다는 거야. 그때 남숙 씨의 머리에 한가지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어. 수진 씨가 처음 지민이를 데리고 왔을 때, 남숙 씨 눈에 좀 이상한 점이 있었어. 바로, 지민이의 머리카락. 7살 여자아이 머리가 꼭 쥐 파먹은 것처럼 마구잡이로 잘려 있었거든.
"처음 아이를 봤을 때 좀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여자아이라고는 하는데 머리를 남자처럼 잘랐는데, 머리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뭔가 인위적으로 가위로 급하게 자른 그런 느낌이 들어서. '쟤 머리가 왜 저러니' 물어보니 남편하고 동네 사람들 모르게 자기가 데리고 나오느라고 본인이 가위로 잘랐다 하더라고요. 남편이 폭력이 심하다고 자기가 그러더라고요."
-임남숙, 찜질방 식당 운영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다던 수진 씨가 사실은,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는 거야. 근데 수진 씨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걸 극도로 꺼려 했어. 아예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며, 밀항하는 방법에 대해 물은 적도 있어. 그래서 어느날 남숙 씨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이 있대.
"너 혹시, 남편하고 싸우다가 남편이 죽었니? 그래서 도망나온 거 아냐?"
"아니에요 언니. 제가 무슨 사람을 죽여요."
남숙 씨는 괜히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수진 씨에게 사과까지 했어. 그 이후 수개월간 가족처럼 지내왔는데, 갑자기 고성 경찰이 수진 씨를 찾는다는 거야.

"갔더니 형사들이 와있더라고요. 그래서 '어째서 왔냐?' 그랬더니 '아기 엄마가 아기를 몇 명 데리고 있느냐' 그래서 '한 명이요' 그랬더니. '혹시 언니가 있지 않아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니 언니는 없고 딸 하나던데요?' 그랬더니. '언니가 있을 거다'라고 하더라고. 엄청 놀랐죠. 그런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고 왔다는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정말로."
-임남숙, 찜질방 식당 운영
형사들 말에 따르면, 사실 지민이에게 3살 터울의 언니 지수(가명)가 있다는 거야. 하지만 남숙 씨는 지수에 대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 도대체 수진 씨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그 시계를 한달 전으로 돌려볼게.
▲ 맨발로 탈출한 아이
2016년 초, 경남 고성경찰서야. 새해 벽두부터 여성청소년계 사무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전국적으로 '장기결석아동'을 조사하라는 방침이 내려왔거든. 특별한 이유 없이 등교하지 않는 아이가 있는지, 일일이 기록을 확인하는 중이야. 갑자기 이런 조사를 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 아이 때문이야.

한파가 몰아치던 2015년 12월. 반바지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가 조심스레 슈퍼로 들어오더니, 힘겹게 바구니에 음식을 담아 오고,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과자를 먹기 시작했어. 심상치 않은 모습에 직원이 아이를 살펴 봤는데, 가까이에서 본 아이는 너무도 말라 있었어. 아이의 이름은 은지(가명). 당시 11살이었는데, 몸무게는 고작 16kg에 불과했어. 은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열한 살 된 딸을 2년 동안이나 가두고 폭행해 온 매정한 아버지와 동거녀에게 법원이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은지 양은 아버지와 동거녀에게 2년 전부터 감금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은지 양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고, 일주일씩 밥을 주지 않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이후 교육부는 경찰과 함께 전국에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했어. 은지와 같은 학대 피해 아동이 더 있는지 확인에 나선 거야.
그런데 고성 지역에선 딱 한 명, 9살 여자 아이 한 명이 2년 째 학교에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발견돼. 바로 수진 씨의 둘째 딸 지민이야. 사실 지민이는 7살이 아니라 9살이야. 그런데 이 지민이는 단 한 번도 학교에 나간 적이 없었대. 형사들은 곧바로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애 엄마가 큰 애랑 작은 애까지 다 데리고 가출했습니다. 저도 어딨는지 몰라요. 그게 한 7년쯤 됐습니다."
애 엄마가 두 딸을 데리고 가출해 행방불명이라는 거야. 이 아빠는 친가가 있는 곳으로 아이들의 주소지를 옮겼어. 마치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려면, 아이 엄마 수진 씨부터 찾아야겠지. 그래서 고성경찰서 형사들이 수진 씨를 찾았고, 천안으로 가서 수진 씨를 찾아냈어. 왜 지민이를 학교에 안 보냈냐고 추궁하자, 수진 씨는 이렇게 답했어.
"아니 제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중이라 기반이 좀 잡히면 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남편의 폭력 때문에 가출했다던 수진 씨가, 다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중이래. 또 말을 바꿨어. 그럼 첫째 지수는 어디있냐고 물었어.
"그게, 외국에서 친정 부모님이랑 지내고 있어요. 아니, 거짓말이에요. 사실은 입양 보냈어요."
계속 횡설수설하는 수진 씨. 형사들은 수진 씨를 긴급 체포했어. 첫째 지수가 사라진 것과 관련해, 엄마 수진 씨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한 거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곳으로 가볼게.
▲ 기묘한 동거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야. 방 5개에 발코니 4개, 30평대 아파트 두 개를 합친 고급 아파트야. 수진 씨는 7년 전 경제적인 문제로 남편과 다투다 가출했고, 두 딸과 함께 이 아파트에서 지냈다고 해. 빚쟁이한테 쫓기는데 이런 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이 아파트에는 또 다른 가족이 살고 있었어.

수진 씨의 대학 동창인 은하 씨네 가족이야. 은하 씨, 은하 씨 어머니, 은하 씨의 두 자녀가 살았어. 수진 씨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한 것도 은하 씨래. 사실 은하 씨도 수진 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해. 남편과 싸우고 가출한 뒤, 지인의 도움으로 이 아파트에서 지냈다는 거야. 은하 씨는 도움을 준 지인을 '박 선생님'이라 불렀어.

박 선생은 은하 씨 아이들의 과외선생님이었는데, 휴대전화 판매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고 해. 박 선생은 같은 여자이자 엄마로서 두 사람의 처지를 안타까워했어. 그래서 본인의 매장에 취직도 시켜줘. 그 덕에 수진 씨는 아이들과 좋은 집에 살면서 일도 배우고, 나름 행복했다고 해.
그런데 아파트에서 산지 2년쯤 됐을 무렵, 7살 지수를 놀이터에 두고 잠시 물건을 사러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아이가 사라졌다는 거야. 경찰에 신고하면 남편이 찾아올까봐 실종신고도 하지 못했대. 수진 씨는 지수를 잃어버린 구체적인 날짜와 상황에 대해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했어. 경찰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순 없었어.
지수가 사라진 건 5년 전 일이야. 목격자나 다른 단서를 찾기 힘든 상황이지. 그래서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하고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수진 씨를 추궁했어. 하지만 모두 실패. 고성경찰서 정성수 서장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어.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때, 한가지 방법이 떠올랐어.
"우리 경찰서에서 제일 독실한 크리스천이 누구지? 그리고 형사들 중에 나이대가 비슷한 아이 엄마도 찾아봐."
수진 씨와 공통분모를 가진 수사관들을 투입해 마음을 열려는 거야. 그날 오후, 새롭게 투입된 두 수사관이 조사실에 들어갔어. 그리고 수진 씨 구속 후 시설에 맡겨진 둘째 지민이의 사진을 내밀었어.
"어머니, 지민이는 잘 있습니다. 시설에서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시작했어요."
그 얘기를 들은 수진 씨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해. 그런 수진 씨에게 "지민이는 걱정 마시고 다 털어놓으세요. 지수, 지금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어.
▲ 엄마의 자백


2016년 2월 15일. 경기도 한 야산에서 지수의 시신이 발견됐어. 피의자는 바로 엄마 수진 씨. 수진 씨는 자신이 이 곳에 지수를 직접 암매장 했다며, 그날에 대해 털어놨어.

"제가 지수를 때렸어요. 잘못한 거 말하라고 했더니 말을 안 해요. 말 제대로 할 때까지 때린다고 했어요. 테이프로 의자에 묶어놓고 때렸어요. 많이 맞으니까 지쳐서 고개를 떨구고, 어깨도 축 처져 있고. 테이프로 간신히 지탱하면서 처키처럼 눈을 부릅뜨고 그만 때리라는 말도 안 해요. 그래서 더 때렸는데, 그렇게 지수가 갔어요."
-김수진 진술 조서 中
하지만 수진 씨는 모든 게 아이를 위한 훈육이었다고 주장해. 2021년 민법에서 '징계권'이 사라지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체벌하는 건 불법이야. 하지만 과거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부모나 교사가 체벌하곤 했지. 이런 수진 씨의 행동,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야. 대체 지수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한 걸까?
"큰 애가 가구들을 훼손하기 시작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가구 흉터는 흉측하고 끔찍하고. 그런 게 발견되니까 또 혼내게 되고 '안 그럴게요'라는 말은 하는데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더라고요."
-김수진 진술 조서 中
지수가 박 선생의 비싼 가구들에 흠집을 냈다는 거야. 아무리 혼을 내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여지없이 흠집이 나 있었대. 얹혀사는 처지에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수진 씨는 7살 지수를 베란다에 가뒀다고 해. 이른 아침 출근길에 아이를 베란다에 가두고, 늦은 밤 퇴근하고 나서야 꺼내줬대. 무려 20일이 넘도록.
수진 씨는 절대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후회의 눈물을 쏟았어. 그럼, 그녀가 가장 후회한 건 뭐였을까? 수진 씨는 가슴을 치며 이렇게 말했어.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지수를 더 강하게 혼냈어야 됐는데. 혼내는 시늉만 하고 진심으로 혼내질 못했어요."
오히려 지수를 더 강하게 혼내지 못했던 걸 후회한대.
그럼, 이 집의 또 다른 구성원 은하 씨네.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이들은 왜 수진 씨를 말리지 않았을까?

이 큰 집에서 은하 씨네 방과 지수가 갇힌 베란다는 상당히 떨어져있어. 한 집에서 같이 살긴 했지만, 공간 자체는 분리된 공간이었던 거 같아. 하지만 수진 씨가 평범한 엄마가 아니라는 건 분명히 느꼈대. 은하 씨의 어머니, 송 씨 할머니의 진술이 있어.
"김수진이 지수, 지민이한테 신경을 잘 쓰지 않고, 옷도 제대로 갈아 입히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은하에게 '김수진은 팥쥐엄마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나 은하는 김수진이 가식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김수진과 단 둘이서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등 거리를 좀 두려고 했었습니다."
-송 씨 할머니 진술서 中
▲ 아이를 죽인 진짜 범인
수진 씨와 주변인들의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피의자를 살인죄로 기소해. 그런데, 지수를 살해함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엄마 수진 씨가 아니었어. 오갈 데 없는 수진 씨와 은하 씨 가족에게 고급 아파트와 일자리를 제공한, 박 선생이었어. 하지만 박 선생은 본인의 혐의를 전면 부인해.

"('아이 폭행 주도했나?' 묻자)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그건 절대 아니고요. 저는 그때 아파 가지고 누워 있었거든요."
"저희들이 폭행을 몰랐던 게, 그 지수 엄마가 티를 안 냈어요 그때. 그래서 저희가 지수 엄마의 설득에 넘어갔어요. 나중에 자기가 스스로 자수할 테니까, (지수 시신 처리) 이번만 도와달라고 그러고."
-박 선생
그저 수진 씨 부탁에 못 이겨, 시신 유기만 도왔다는 거야. 은하 씨와 송 씨 할머니 역시, 박 선생의 억울함을 주장했어. "수진이가 지수를 때렸고, 박 선생은 오히려 수진이를 말렸다"면서. 하지만 검찰은 주도적으로 학대를 지시한 박 선생에게 살인죄를 적용했어. 그리고 박 선생의 지시에 따라 아이를 폭행한 수진 씨에겐 학대치사죄를 적용했어. 또 암매장을 도운 은하 씨는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이 모든 것을 한집에 살며 방조한 송 씨 할머니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해.
갑자기 사건이 완전히 뒤집혔어. 대체 왜 수사 방향이 바뀐 걸까? 사실 수사기관은 처음부터 수진 씨의 자백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이 아파트에 함께 살았던 모든 이들을 불러 조사했어. 그 결과, 딱 한 사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가 있었어. 바로, 은하 씨의 아들, 11살 민찬(가명)이야.
사건 당시 6살이었던 민찬이는, 어른들의 진술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털어놨어. 이 아파트에, 한 가족이 더 살고 있었다는 거야. 바로, 박 선생의 가족. 무려 11명이 함께 한 기묘한 동거야.

수사관: 베란다에서 생활한 사람은 누구누구 예요?
민찬: 저랑 지수 누나랑 지민이요.
수사관: 베란다에서 어떻게 생활했어요?
민찬: 그냥 이불 깔아놓고 안쪽에 장난감 놔두고 그냥 문 잠그고 생활했어요.
수사관: 지수 누나가 집 주인 이모한테 맞았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민찬: 지수 누나 몸에 멍이 다 있었어요.
수사관: 집 주인 이모가 의자에 묶은 게 어느 정도였던 거 같아요?
민찬: 저는 한 번이고, 지수 누나는 많았어요. 누나는 12시간 그럴 때도 있었고, 24시간 그럴 때도 있었어요.
지수를 때린 사람은, 엄마 수진 씨가 아니라, 박 선생이었어. 그런데 이 집엔 아이들의 엄마도 같이 있었잖아. 아무리 고마운 은인이라 해도, 아이들을 이렇게 학대하는데, 같이 살 수 있을까? 왜 수진 씨와 은하 씨는 그러지 않았을까? 게다가 수진 씨와 은하 씨는 수사기관에 박 선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고 해. 대체 이 엄마들이 숨기고 있는 건 뭘까?
▲ 잔혹한 학대의 이유
수진 씨가 박 선생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초, 생활비 문제로 남편과 자주 다투던 때래. 수진 씨가 어느날 몸이 아파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박 선생이 찾아 왔대.
"은하가 자기 한 번만 도와달라고 어찌나 부탁을 하는지. 내 말 잘 들을 수 있어? 그럼 내가 도와주고."
-박 선생
박 선생은 본인의 휴대전화 사업에 투자하면 나중에 대리점을 내주겠다고 제안했어.
"박 선생님은 재테크를 잘하셔서 재력가가 되고 제가 선생님에게 10억 가까이 되는 돈을 투자하면서 선생님이 '대리점을 만들어 사업체를 키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선생님 옆에 있으면 지수, 지민이 키우는데 문제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수진 진술조서 中
수진 씨는 남편과 살던 집에 담보대출을 몰래 받은 것도 모자라, 친정 부모님이 살던 집까지 팔았어. 그 뒤로도 박 선생이 돈을 계속 요구하자, 사채까지 써가며 그 돈을 마련한 거야. 은하 씨와 송 씨 할머니 역시 박 선생에게 큰 돈을 투자했어. 그 문제로 가족과 다투고 집을 나와 박 선생네 집에서 살고 있던 거야. 이후 수진 씨와 은하 씨는 하루 12시간씩 휴일도 없이, 박 선생의 대리점에서 근무했대.
그럼 그 두 사람, 박 선생의 대리점을 넘겨 받았을까? 애초에 두루뭉술한 구두계약이었어. 대리점은 무슨, 임금 한 푼 받은 적이 없어. 대출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고 말았어.
이런 상황인데도 수진 씨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어. 그 무렵, 진짜 악몽이 시작됐거든. 박 선생이 언제부턴가 지수만 콕 집어서 "가구에 흠집을 냈다"며 혼내기 시작한 거야. 지수는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박 선생은 지수를 때리는 것도 모자라, 아이를 베란다에 가뒀어. 그러면서 박 선생은 지수에게 이런 벌을 내려.

"얘 이제부터 하루 한 끼만 먹여! 갇혀 있는 애가 세 끼 다 먹을 필요 없잖아?"
-박 선생
일곱살 지수를 굶기기 시작한 거야. 하루 한 끼도 반찬은 커녕, 물에 말아 간장을 타서 줬어. 지수가 그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으면, 그 한 공기도 많다면서 밥을 또 덜어냈대.
지수는 계속 엄마에게 본인이 한 게 아니라고 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박 선생은 오히려 수진 씨를 더 크게 다그쳤어.
"지수가 하는 말 다 거짓말인 거 몰라? 엄마가 이렇게 약해 빠져서 애가 이 모양인 거라고!"
-박 선생
엄마 수진 씨는 누구의 말을 믿었을까? 수진 씨는 "내가 괴물을 낳았구나" 생각했어. 그래서 박 선생의 지시대로, 지수를 때렸어. 말을 듣지 않아서 한 대, 거짓말을 한다고 또 한 대. 어떤 날은 100대를 때린 적도 있어. 그러면서 오히려 박 선생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대. 무능력한 본인 대신, 아이를 올바르게 인도해 준다고.
검찰은 전문가에게 수진 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해. 감정을 맡은 김경우 원장은 그동안의 사건 자료와 진술 기록을 꼼꼼히 살폈어.

"쉽게 생각하자면 그냥 우리가 흔히 보는 어떤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보는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 열성 신도들. 거기에 거의 준하거나 더 심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집주인(박 선생)이 우리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더 신에 가까운 존재다 신의 계시를 조금 더 잘 받는 존재다, 집주인의 말을 따르는 게 조금 저 신의 뜻이고 집주인을 거스르면 아무래도 천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김경우, 수진 씨 면담 정신과 전문의
"박 선생님의 오빠가 영양실조로 죽을 뻔한 것을 박 선생님이 살렸다고 했고, 박 선생님의 아버지가 입원했던 병실에 있던 아이들 모두 병원에서는 회복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박 선생이 데려와 치료해 회복시켰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빚이 많았는데 그것을 모두 갚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믿음으로 극복했다고 했습니다."
-김수진 진술 조서 中
박 선생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이 집주인이 쓴 전략이 되게 전형적인데 종교적인 영험함 더하기 돈을 계속 어필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있다가, 속된 표현으로 기도발이 잘 먹혀서 돈을 벌게 하나님이 해주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친모 입장에서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거잖아요. 집주인이 돈이 많다는 게 영험함의 확실한 증거인 거죠. 그럼 이 사람을 믿는 게 자기한테도 꽤나 큰 이득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 같아요."
-김태경,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사실 수진 씨는 의존성 인격장애가 의심될 만큼, 독립성이 없고 자기 결정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해. 남편과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수진 씨에게 박 선생은,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같은 존재였을 거야. 박 선생의 말만 잘 들으면, 자기도 그녀처럼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지수가 사망한 날도, 발단은 박 선생의 기도였다고 해.
"내가 기도를 하다가 말씀을 들었는데, 지수 쟤가 우리를 다 죽여버린대! 너 어쩔 거야? 제대로 좀 교육하란 말이야!"
-박 선생
박 선생은 지수의 눈가 다크서클이 그 증거라면서, 수진 씨를 몰아 세웠어. 수진 씨는 지수를 방으로 데려가. 그리고 오늘은 정말 끝장을 내자는 심정으로, 의자에 묶고 사정없이 때렸어.
"진짜 다 죽이겠다고 생각했어?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 안 해?"
온몸이 새빨개진 채 의자에 축 늘어진 지수가, 겨우겨우 목소리를 내서 말했어.
"네… 엄마… 다…. 죽인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지수가 힘겹게 내뱉은 마지막 말이야. 이렇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수진 씨는 이제 됐다 싶어서, 박 선생에게 보고했어. 그리고 그대로 지수를 의자에 묶어둔 채, 점심쯤 출근했대. 그런데 오후 4시쯤, 박 선생에게 "지수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아. 수진 씨가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지수의 호흡과 맥박이 멈춘 상태였어.
이후 이 비정한 엄마들의 선택은 더 잔혹했어. 수진 씨와 은하 씨, 그리고 박 선생의 언니는 박 선생의 지시에 따라 지수의 시신을 골프가방에 담아 차에 실었어. 그리고 박 선생의 시댁 선산에 지수의 시신을 암매장 했어.
그런데 지수가 떠나고 3년 만에 또 일이 터졌어. 박 선생이 이번엔 둘째 지민이를 문제 삼은 거야.
"지민이 쟤도 심상치 않아. 우리 다 자다가 쟤한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고."
-박 선생
결국 수진 씨는 지민이와 쫓겨나듯 집을 나왔어. 그렇게 떠돌다가 천안까지 가게 된 거야. 그럼 적어도 이 때는, 박 선생에 대한 믿음이 깨졌을까? 아니. 이후에도 수진 씨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어. 그래서 박 선생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인이 지수를 죽였다고 자백했던 거야. 전문가들은 수진 씨가 지수의 사망 이후에 박 선생에게 더욱 매달렸을 거라고 해. 본인의 믿음이 깨지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되거든.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박 선생은 세 아이 중 지수만 유독 괴롭혔잖아. 왜 하필 지수였을까? 당시 2억 원을 투자한 은하 씨와 송 씨 할머니와 달리, 수진 씨는 무려 10억에 가까운 돈을 투자했어. 범죄심리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박 선생은 이 돈을 돌려주지 않으려 했던 걸로 보인대. 그래서 지수가 하지도 않은 일을 꼬투리 잡아 모녀를 내쫓으려고 했던 거지. 결국 돈 때문에 죄 없는 일곱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거야. 결국엔 지민이까지 문제 삼으며 목표한 바를 이뤘지. 그러면서 박 선생은, 본인의 자녀들에게는 지극정성인 엄마였대.
지금까지 진술을 바탕으로 검찰은 수진 씨에게 학대치사죄, 박 선생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기로 해.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볼 수도 있는데 왜 박 선생만 살인죄로 기소했을까? 거기엔 또 비밀이 있어. 그건 재판 과정에서 이야기해줄게.
▲ 누가 학대를 주도했나
2016년 봄,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이 사건의 첫 공판이 있는 날이야.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방청석에 앉았어.

"제가 2013년부터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시민 모임을 작게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단신으로 나왔기 때문에 사건 내용 전체가 나온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충격이다' 이게 아니라, 기이하다… 처음 마주친 거는 집주인을 딱 마주쳤어요 복도에서. 다부지고 당당하게 생겼고, 걸음걸이도 당당했고요. 말하는 것도 엄청 셌고요. 후에 친모가 나왔는데, 첫인상은 되게 순하고 예뻤었어요. 요기 앞머리만 하얗게 세어 있더라고요. 그리고 벌써 이렇게 들어오는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 있고 우느라고. 증언을 잘 못할 정도였어요."
-공혜정, 당시 첫 공판 참여
수진 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어. 하지만 박 선생과 그의 변호인은 "피고인 박 씨가 아이를 폭행하고 학대를 지시했다는 증거 있습니까?"라며 무죄를 주장했어. 검찰은 그 증거로 11살 민찬이의 진술 기록을 제시해. 민찬이는 박 선생의 학대를 증언한 유일한 목격자야. 민찬이의 증언에 대해 박 선생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른들에 의해서 민찬이의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증거능력 자체를 부인했어. 그런데 그때, 민찬이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대답해.
"그때 베란다에 모기가 있었어요."
분석관들은 이 말에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대.

"모기한테 물렸다는 거는 되게 감각 정보잖아요. 그 사건 속에 들어가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그렇게 기억해 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 좀 특이했고요. 행동 재연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조사자가 말을 못 알아들을 경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장면을 아이가 이야기해 준다든지…"
-최선희,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거를 억지로 꾸며내서 추측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없었고, 그 동행한 친부의 말에서 조금 본인이 생각할 때 아니다 틀렸다 하는 부분은 즉시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는 부분들도 있었고요. 긴장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박슬기,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민찬이가 사건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했지만, 당시 모기가 있었다는 경험을 떠올린 거야. 그래서 분석관들은 민찬이가 직접 경험한 바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어. 박슬기 분석관은 그 사실이 더 슬펐다고 얘기해.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할까요? 그 행위들을 나에게도 했지만 사망한 피해 아동에게 더 많이 했었다, 그 피해 아동을 생각하고 떠올렸을 때 이 인생의 전반에서 이 아동이 이런 결말을 맞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 어떻게 보면 마지막까지 고통을 받다가 사망을 한 거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 이 사건 하고 나서 조금 심리적으로 힘든 면도 있었고. 그렇게 조금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박슬기, 대검찰청 진술분석관
박슬기 분석관은 직접 법정에 나와 민찬이의 진술이 신뢰성이 있다고 증언했어. 그리고 재판부는 민찬이의 진술을 인정했어. 열한살 민찬이 덕분에, 박 선생이 아이들을 폭행하고 학대를 주도했다는 혐의가 입증된 거야.
이제 이 재판의 남은 쟁점은, 누가 지수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야. 사망 당일 지수를 직접 폭행한 수진 씨, 그리고 그 폭행을 지시한 박 선생. 누가 지수를 죽인 걸까? 검찰은 국내 법의학 권위자 이정빈 교수에게 사망 원인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어.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이 자료가 아무것도 없다 이거야. 유골을 발굴을 했는데 부검을 했는데, 사망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관련 사람들의 진술, 신문 조서, 이거에서 사망원인을 좀 파악하고. 어떻게 죽었는가를 이야기해줄 수 있냐 해서. 그게 어디 소설 쓰는 얘기지, 얘기 갖고 하는 거는. 그래도 있는 자료는 그거 밖에 없으니까. 그거에서 그 사람들이 한 얘기를 옳다 치고, 거기에서 왜 죽었느냐를 얘기해줘야 되니까. 이게 조금 어렵더라고요."
-이정빈, 법의학자
시신이 아닌 진술을 가지고 사인을 밝혀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때, 진술서를 읽던 이 교수의 눈에 '다크서클'이라는 단어가 포착됐어.

"바깥으로 아이를 내몰고 하루에 한 끼 밖에 안 줬고, 거기서 나온 결과가 뭐가 있었느냐? 눈에 다크서클이 있었다. 이것만 갖고도 기아상태가 됐었다 얘기할 수 있어요. 그 상태에서 맞으니까, 조금만 출혈이 있어도 피 양이 줄어드는 거예요 만성적으로. 유효 혈액량이 줄어드니까 사망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애는 계속 맞은 겁니다. 이슬비 맞듯이 맨날, 오늘 또 맞아, 오늘 또 이슬비 맞아, 매일 그냥 루틴으로 하루의 일과로 그렇게 맞은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이정빈, 법의학자
일곱살 아이한테 다크서클이 생겼다는 건,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를 뜻해. 그럼 우리 몸에 피를 만들어내는 조혈 기능도 약화돼. 그래서 이 교수는 지수가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어. 그리고 이 교수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덧붙여.
"이때 과정을 보면 어떻게 보면 되냐 하면, 짚불 알죠? 짚불이 불 피워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깥에는 다 없어진 것 같은데 안에는 아직도 조금 남아 있어요. 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먹은 상태에서 비실비실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때렸다고 그러면 의식이 없어져요. 의식이 없어지면 아직 죽지는 않았어요. 이때 병원에 데리고 갔으면 그때 혈액 보충만 해주면 살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었지 않았냐…"
-이정빈, 법의학자
이 교수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검찰은 박 선생의 혐의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주장했어. 법적 의무를 가진 자가 적극적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를 뜻해. 예를 들어, 수영장 안전요원이 물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아서 아이가 사망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돼.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되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어. 바로 살인의 고의성. 박 선생이 살인을 목적으로 했거나, 사망을 예견했음에도 위독한 지수를 방치했다는 걸 입증해야 해.
▲ 양심선언
현재 유일한 방법은 박 선생의 자백 뿐이야. 하지만 재판에서 박 선생은 단 하나의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어. 다 친모 수진 씨 혼자 벌인 일이라 주장했어. 그런데 그때, 방청석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서. 그리고 박 선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쳐. "내가 실로폰 채 사다 줬잖아! 당신이 그걸로 애들 때렸잖아!"라고.

"제가 이제 재판에 갔을 때 웬 할머니 한 분이 항상 참석을 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이 할머니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분이었더라고요. 자기는 아이들을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다 막 이렇게 집주인이 거짓말을 하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거짓말을 하지?' 제 옆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가지고 '내가 여기서 죽어도 할 말을 해야 되겠다'고. '실로폰 채 사 오라고 해서 애들 많이 때렸잖아!'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은하 씨의 어머니, 민찬이의 할머니, 송 씨 할머니였어. 거짓말로 일관하는 박 선생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녀의 실체를 비로소 깨달은 거야. 이후 증인석에 선 송 씨 할머니는, 그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끔찍한 비밀을 털어놨어.
"제가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박 선생님이 지수 방에 계속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박 선생님이 지수 방으로 들어간 이후 지수가 '악' 하고 소리 지르며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도 지수를 더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송 씨 할머니 진술조서 中
송 씨 할머니에 따르면, 박 선생이 지수가 묶여있던 방에 들어간 뒤 지수의 비명 소리가 두 차례 들렸다고 해. 두 번째 비명 소리가 들리고 난 후, 한시간쯤 지나 박 선생은 그 방을 나왔어. 그리고 지수가 이상하다며 허둥지둥 수진 씨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었대. 박 선생의 행동으로 봤을 때, 지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건 분명해. 그럼 박 선생은 그 당시 지수에게 응급조치를 했을까?
"박 선생님이 방에서 허둥지둥 나와 애가 이상해서 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는 취지로 말을 하고 조금 지나, '애랑 엄마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하나님이 그냥 죽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지수가 죽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송 씨 할머니 진술조서 中
이후 수진 씨가 박 선생을 붙잡고 지수를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도, 박 선생은 119에 신고하지 않았어. 대신 수진 씨에게 기도를 하라고 지시해. '모든 걸 다 포기할 테니 지수를 살려내라'고 기도하면, 아이가 살아날 거라는 거야. 맞아. 그 수진 씨의 투자금 10억 원. 비참하게 죽은 지수의 시신을 앞에 두고, 흥정을 한 거야.
검찰은 박 선생이 지수의 사망을 예견했음에도 아이를 방치했기 때문에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박 선생 측은 송 씨 할머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펄쩍 뛰었어.
"난리가 났었죠. 막 소리 지르고 자기가 안 그랬다고 '나는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막 거기서 육두문자를 써요. '저 미친X가 내가 얼마나 너한테 잘해줬는데' 이러면서 막 소리 지르고. 제지도 많이 당했어요."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이 재판.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 1심 판결은 이렇게 나왔어.

"피고인 박 씨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피해자를 방치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피해자를 방치함으로써 사망하게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피해자는 제대로 된 양육이나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아동학대를 받아오던 중 7년 남짓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신들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경감하기 위해 피해자를 나쁘고 못된 아이로 규정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더욱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박 씨를 징역 20년에, 친모를 징역 15년에 처한다."
-1심 판결문
판결을 들은 박 선생은 잘못된 판결이라고, 억울하다며 날뛰었어. 그리고 항소에 상고를 거듭했어. 하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았어. 그럼 수진 씨의 반응은 어땠을까?

"지금도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거는 목에 굵은 핏줄이 올라올 정도로 그 눈물을 쏟아내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벌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저는 이 아동 학대 관련 재판에 가서 가해자들이 그렇게 후회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근데 죄는 분명히 미운데, 그 엄마가 자책하는 모습이 그냥 슬펐습니다. 미운데 불쌍하고 슬펐어요."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 어른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
수진 씨 지인들에 따르면, 수진 씨는 두 딸을 지극히 챙겼던 딸바보 엄마였다고 해. 박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손 한 번 댄 적 없는, 착한 딸바보 엄마. 그렇게 목숨처럼 아꼈던 그 아이를 제 손으로 보내고 법정에 섰을 때,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른들의 진술 속 지수는 그저 못된 아이였어. 근데 그건 박 선생이 다 꾸며낸 거잖아. 그럼 진짜 지수는 어떤 아이였을까. 지수를 제대로 기억하고 싶은데, 아이의 삶이 너무 짧아서, 남은 기록이 거의 없었어. 그나마 지수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조각들이야.
"참 잘 웃었어요. 아기 때부터 잘 웃었어요."
"말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말을 아주 참 잘했고요."
"글을 가르치면 글을 잘 알았고, 착하고 똑똑했죠."
"꾸미는 거에 관심 많은 아이였어요."
"손이 참 예뻤어요."
살아있었다면 올해 21세의 숙녀가 됐을 지수에게, 우리가 꼭 해야할 말이 있어. 먼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내가 뭔가 많이 잘못해서 엄마가 나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때린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이유 없이 나를 때린다고 아이가 믿기 시작하면 너무 무섭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은 나보다 지혜롭고 어른인 엄마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바꿔요. 내가 나쁜 아이이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저렇게 때린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너무 슬프죠."
-김태경 교수,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지수는 겨우 다섯 살에 그 아파트에 들어갔어. 2년 동안 박 선생과 살면서 지수가 의지할 곳은 오로지 엄마, 수진 씨 뿐이었을 거야. 그런 엄마가 매일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지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박 선생의 말처럼 스스로를 못된 아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런 지수에게, 늦었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지수야, 네 잘못이 아니야."

아까 맨 처음에 봤던 아이 그림 기억나? 크리스마스 트리와 집 그림. 이건, 오늘 이야기에 등장했던 한 아이의 그림이야. 바로, 한겨울에 맨발로 탈출해 슈퍼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던 아이, 열한 살 은지야. 이 은지의 그림, 원본을 보여줄게.

너무도 작은 크기의 원본 그림. 이런 작은 그림은, 이 아이의 심리적 압박감이 심하다는 걸 의미해.
은지 사건 이후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했잖아? 은지나 지민이처럼 학교에 나가지 못했던 학대피해 아동들, 얼마나 더 있었을까? 조사를 시작하고 9개월 만에 무려 6명의 아이들이 시신으로 발견됐어. 그 중엔 지수도 있었지. 하마터면 완전 범죄로 묻힐 뻔한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11살 은지가 밝혀낸 거야. 이뿐만이 아니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초, 중학교를 나오지 않은 아이만 3,179명. 그중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돼 경찰에 신고조치 된 아이는 총 419명이었어.
그런데 2023년 교육부가 이 조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기로 발표했어. 왜 갑자기 매년하기로 바뀐 걸까? 또 한 명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고 난 후에야, 뒤늦게 정기점검을 하기로 한 거야.
'아동복지법은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어. 아이들의 희생을 딛고 법체계가 조금씩 발전해 왔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어른들이 아이들의 비극보다 한발 더 앞서기를, 그리고 그 발걸음이 부지런히 이어지길 바랄 뿐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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